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
지난 2월 28일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은 결국 결렬됐다. 혹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양복을 입지 않아 미국의 반감을 샀다고 분석했고, 어떤 사람은 그가 통역 없이 외국어인 영어로 말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모국어로 말하면 말이 생각을 따라가고, 외국어로 말하면 생각이 말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외국어로 말하다 보면 생각의 끈을 놓쳐 불이익을 받는다는 뜻일 게다.
통역사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통역하기 몹시 어려운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그의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발언과 행동을 묘사할 때 종종 ‘자유분방한(freewheeling)’이라는 형용사를 쓰곤 한다. 그만큼 통역은 까다로워진다.
트럼프의 배경에 답이 있다. 그는 정치인이기 전에 사업가이자 방송인이었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NBC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 진행자로 활약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방송에서 다져진 트럼프의 쇼맨십은 대중 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연설 중 특유의 화법과 제스처를 활용해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특히 지난 2016년 대선 때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집회에서 그는 즉흥적 발언과 유머로 분위기를 띄워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자기 의견을 직접 전달하며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전통적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도 지지자들과 소통하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확산시켰다.
통역사를 대하는 지도자의 태도에서는 그의 성정이나 인격도 엿볼 수 있다. 트럼프는 통역사를 단순한 기술자로 생각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통역에 신경 쓰지 않고 맘대로 발언하고 어떤 때는 통역 듣기를 거부한다.
지난 2018년 5월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약식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 후 “통역을 들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전에 들었던 게 분명하기 때문”(And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같은 해 프랑스를 방문해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이 프랑스어로 진행되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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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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