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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토)

말랑말랑 세계시민 감수성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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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꽃병에서 떨어진 애벌레에게 늘꿈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안정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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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정선 | 서울은진초 교사
·세계시민교육연구소 운영위원



“선생님! ‘늘꿈이’는 밤나방이라는 해충이래요. 해충이라고는 하지만 꽃 위에 앉아서 힐링하는 낭만적인 생명이에요.”



툭! 아이들과 함께 꽂은 꽃병에서 연둣빛 애벌레 한 마리가 떨어졌다. 아이들은 우리 교실에 불시착한 애벌레에게 늘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끈질긴 검색 끝에 마침내 그 정체를 알아냈다. 예쁜 나비를 기대한 아이들에게 해충으로 악명 높은 밤나방이라는 늘꿈이의 미래는 자못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늘꿈이가 검은 날개를 펼친 어느 이른 아침에도 아이들은 애정과 호기심으로 늘꿈이의 안부를 물었고, 그 날 이후로도 매일같이 늘꿈이 곁에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눴다.



무섭고 두려운 나방 한 마리가 아이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낯선 존재를 향한 호기심이 관심으로 이어지고, 환대와 적극적 보살핌이 자연스럽게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는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움직임에서 출발한다.



거북이의 날 기념 플라스틱 병뚜껑 정크아트 감상회에 참여해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안정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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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필자는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범위를 지구의 영역으로 확장해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세계시민 감수성을 키우고자 ‘지속가능 올 라이트(ALL RIGHT)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했다.



유엔에서 제시한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인권(Rights), 성장(Increase), 생태(Green), 평화(Harmony), 공존(Together)의 영역으로 분류해 수업 내용으로 삼았다. 감수성 톡톡 질문으로 깨우는 깨움(Awake), 친구들과 함께 배우는 배움(Learn), 아이들의 삶과 연결하는 실천(Link) 세 단계의 프로젝트 수업을 구안했다.



인권(R) 프로그램에서는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도상국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질문을 만들었다. 꼬마활동가가 되어 함께 답을 찾아가며 개발도상국에 적정한 학교(적정학교)를 만들었다. 다른 꼬마활동가가 만든 적정학교 곳곳에 숨어 있는 아동권리를 찾아보는 활동을 하고, 옆 반 친구와 동생들을 초대해 아동권리와 적정학교를 소개했다.



성장(I) 프로그램에서는 유엔 국제기구의 활동가가 되어 우리 학급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일 수행하고 마일리지를 적립해 지속가능한 우리 반을 만들었다. (이 마일리지는 학기 말 ‘올 라이트 알뜰시장’의 쿠폰으로 사용됐다.) 또한 불공정 무역 게임을 통해 지구촌의 불평등을 체감한 뒤에는 지구촌이 함께 성장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무역 게임을 통해서는 지구촌의 공정한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했다.



1학년 짝동생과 산책하며 푸른 오월을 만끽하고 있다. 안정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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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 빗방울이 되어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는 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안정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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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G) 프로그램에서는 5월23일 거북이의 날을 맞이해 해양환경 도서 읽기, 한 달간 모은 형형색색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정크아트 작품 만들기, 인공지능을 활용한 행복한 거북이 노래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지구 튜브 미디어를 제작해 동생에게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알렸으며, 에너지드림센터와 자원회수시설 탐방을 통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방법도 배웠다.



평화(H) 프로그램 중에는 따독따독(따뜻한 독서)과 마음챙김 빗방울 놀이의 호응도가 높았다. 따독따독은 교실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카페독(차를 마시며 읽기), 엎독(엎어져서 읽기), 눕독(누워서 읽기), 캠핑독(캠핑장에서 읽기)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마음챙김 빗방울 놀이는 장마철의 어느 날, 빗방울이 되어 학교 운동장의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려보고 연못을 산책하며,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고 감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공존(T) 프로그램에서는 1학년 짝동생과의 산책, 4학년 친구들과 협업 프로젝트, 진주시 친구들과 편지 교류를 했다. 한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홍콩의 친구들을 우리 학급으로 초대해 학교 탐방을 안내하고, 서로의 전통 문화와 놀이를 교류하는 시간도 가졌다.



네팔 친구들을 위해 만든 적정학교를 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안정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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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올 라이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론이는 “‘평소 감성이 풍부해 다스리기 힘들었는데, 마음을 잘 컨트롤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고, 주윤이는 “덕분에 사춘기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 스스로 마음의 성장과 변화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이걸 왜 배우나 의문이 들었지만, 배우면서 더 알아봐야겠다는 호기심에 더해 알게 된 것을 해보고 싶다”는 예서의 소감을 통해, 지속가능 올 라이트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세계시민 감수성을 ‘앎’에서 ‘삶’으로 확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세계시민 감수성을 가득 담아 하교 전 매일 씩씩하게, 즐겁게 외치는 ‘올 라이트’ 구호를 지구촌 모든 어린이들과 함께 외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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