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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인력·장비 턱없이 부족 … 돌풍까지 불어 ‘악전고투’ [전국 동시다발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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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왜 더디나

28곳서 진화작업… “역량 집중 못해”

바싹 마른 나무들이 불쏘시개 역할

“헬기가 진화한 만큼 다른 쪽서 번져”

울주 산불현장은 송전탑 많아 난항

천연기념물 울산 ‘목도’ 일부도 피해

참사자 동료 대원 웅덩이 피신 화 면해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산림 당국이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조한 날씨 속에 강한 바람이 부는 데다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해 산불을 끄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서다.

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대형산불 현장 한복판에 투입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원들이 곡괭이 등을 이용해 산불 확산을 막고 있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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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산림 당국 등에 따르면 21일 오후 3시28분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오후 6시 기준 산청 산불로 피해가 예상되는 구역은 1380㏊에 달한다. 전날 오전 11시25분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직선거리로 9㎞ 떨어진 의성읍 방면까지 확산하고 있다. 의성 산불로 인해 잿더미로 변한 산림은 6078㏊를 넘어섰다. 22일 낮 12시12분 울산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역시 만 하루가 지나도록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이들 지역에는 강풍에다가 골바람(골짜기에서 산꼭대기로 부는 바람)까지 불어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더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 산청군에는 초속 6∼9m의 순간 최대풍속이 불었다. 산 정상 부근에는 초속 10∼15m의 강풍이 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의성군의 순간 최대풍속은 17.9m였다. 울주에서도 최대 풍속이 초속 6∼7m인 돌풍이 수시로 불고 있어 현장에서 주불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오늘 오후 8시 이후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더 강한 바람이 분다고 예보된 상황”이라며 “헬기가 불을 끄는 면적만큼 다른 쪽에서 산불 피해 면적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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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바꾸며 부는 강풍 탓에 산청에서는 22일 산불 진압 작업에 투입됐던 산불진화대원 60대 3명과 이들의 인솔을 맡았던 창녕군 30대 공무원이 숨졌다. 이들은 21일 투입된 산불 진화 작업조와 교대해 22일 오전 11시쯤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산청 구곡산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잔불을 끄던 이들은 갑자기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어 고립돼 있다가 현장을 벗어나지 못해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구곡산 7부 능선 주변에서 발견됐다. 이들과 함께 진화 작업에 투입된 5명은 근처 땅 꺼진 웅덩이로 몸을 피해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주 산불의 경우 구역 내 송전탑이 줄지어 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헬기가 사고 위험 때문에 산불 지점 바로 위에서 용수를 뿌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울주 산불 현장의 송전탑 높이는 90m. 헬기는 이 송전탑보다 20∼30m 더 높은 곳에서 물을 뿌린다. 산림청 관계자는 “물방울이 100m 이상 떨어지는 과정에서 일부가 증발하거나 투하 지점에서 비켜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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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 자원이 전국으로 분산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오후 6시 기준 최고 대응 수준인 산불 3단계가 발령된 곳만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 3곳이다. 이날 하루에만 전국 28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 진압 작업이 이뤄졌다. 울산소방본부에는 소방헬기가 2대 있는데, 이 중 1대도 울주 산불보다 앞서 발생한 산청 산불 지원을 나가 있는 바람에 울주 산불 진화 작업 초반에 투입되지 못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잇따르고 있어 헬기 등 진화능력을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불 현장의 급경사와 암석지, 좁은 길 등도 진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경남소방본부에 소속된 30대 한 소방관은 “산불 현장은 헬기가 닿지 않는 곳에 직접 사람이 들어가 불길을 끌 수밖에 없는데 인력이 많지 않아 체력 소모가 크다”고 말했다.

대형 산불 속에서 국가유산 피해도 잇따랐다. 산청 산불이 인근 경남 하동으로 번지면서 수령이 900년에 이르는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불에 탔다. 두양리 은행나무는 고려시대 장군 강민첨(963∼1021)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의성에선 비지정 문화재 운람사가 전소했다.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있는 천연기념물 65호 목도(目島) 일부도 불에 탔다. 대규모 동백나무 군락이 있는 목도는 훼손을 막기 위해 1992년부터 출입이 금지됐다.

울산·산청·의성=이보람·강승우·배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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