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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신하는 여야, ‘목욕당’을 다시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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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최근 여의도 정가에선 웃지 못할 이야기가 화제였다. 국회의원들 간에 ‘국회 목욕탕 TV채널 사수전’이 벌어진 것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목욕탕에 특정 채널만 매일 틀어놓고 있다”며 채널을 바꿔놨다고 하자,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틀어놓은 사람은 나다. 뒷담화하는 게 찌질하다”라고 공개 저격했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다.

사석에서 만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정말 못 믿겠다. 말을 호떡 뒤집듯 한다”며 상대당을 향한 불신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 같은 불신이 입법 과정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반도체특별법 논의가 대표적이다. 여야는 반도체 업계 지원 방안에 대해선 잠정적으로 합의했지만, ‘주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도입’을 두고 맞서고 있다. ‘지원 방안부터 우선 처리하자는 야당 제안을 받을 생각은 없나’라는 물음에 여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나중에 야당이 또 말을 바꾸면 어떻게 하나”라고 했다. 민주당이 반도체특별법부터 상법 개정안 등 말 바꾸기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여야가 약속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신을 해소하는 시작은 대화다. 그러나 만남이 사라진 지 오래된 모습이다. 최근 한미의원연맹 창립총회에 모인 여야 의원 50여 명은 22대 개원 이후 10개월 만에 회의석상 밖에서는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를 들은 한 5선 의원이 “여당 의원도 야당 의원도 괴물이 아닌데”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 게 공감된다.

여야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이 국민의 국회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국회는 최근 3년 연속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으로 꼽혔다. ‘입법 수요 사각지대’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탓이다.

지난 2009년 18대 국회에선 일명 ‘목욕당(沐浴黨)’이 창설됐다고 한다. 국회 의원회관 목욕탕을 애용하는 여야 의원들이 터놓고 의견을 나누자며 만든 친목 모임이다. 이를 본받아 여야는 대화를 시도하고 불신부터 씻어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국방 장관의 첫 인도·태평양 순방에서 한국이 제외돼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고 있고, 미국발 관세 전쟁 대응까지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목욕탕 TV채널 사수에 힘들일 때인가.

박숙현 기자(cosmo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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