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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모펀드 도입 20년, 홈플러스 사태에 공든탑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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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분명 있는데, 악질 투기자본 꼬리표가 또 붙게 생겼네요."

17일 한 사모펀드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난 20년 동안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금씩 개선돼 왔지만, 최근 MBK파트너스(MBK)의 홈플러스 기습 법정관리 사태로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생겼다는 토로였다. 그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규제가 강화되면 결국 우리 시장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출범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펀드 숫자는 20년 전 2개에서 지난해 말 약 1100개로 폭증했다. 운용자산 규모도 2000억원에서 136조로 증가하며, 국내 자본시장 발전의 한 축이 됐다.

사모펀드를 두고 초기엔 악질 투기자본이란 비판이 거셌다. 기업 경영권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한 국내의 시선은 유독 차가웠다. 하지만 경기 침체 때 부실기업을 떠안아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이끌어 내고, 다시 고용을 창출하는 여러 사례를 보여주며 인식을 개선해 왔다.

2021년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던 남양유업을 한앤컴퍼니가 인수해 실적 반등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경영 위기에 빠진 코웨이를 MBK가 인수해 경영효율화 작업을 거쳐 다시 시장에 내놓으며 산업 생태계에 역동성을 가져온 것도 좋은 사례다.

하지만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공든탑이 무너지게 생겼다. 거리엔 '탐욕 자본 MBK 엄벌하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든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는 MBK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홈플러스의 경영 실태를 보면 문제점이 여럿 드러났다. 과도한 차입 경영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가 부재했다. 또 부동산 투기에 가까운 경영은 투자 자본 회수에만 매달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최근 MBK가 대주주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14일 홈플러스가 마련한 기자회견에 김광일 MBK 부회장이 전면에 나섰지만, 쟁점에 대한 답변은 모두 피했다. 또 MBK 측은 법정관리 과정에서 주주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기자회견 이후 사태가 더욱 악화하자 지난 주말 김병주 MBK 회장이 뒤늦게 사재를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회생절차를 받아들인 이후 열흘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그마저도 구체적인 규모와 계획은 없어 진정성엔 물음표가 남는 상황이다.

이번 논란은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며 사모펀드 규제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1세대 사모펀드이자 '큰형'인 MBK가 이번 논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따라 사모펀드 산업의 미래가 달렸다. MBK는 사태 해결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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