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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부대 우리 지역에” 173m 상소문… 화장장 유치 9개 마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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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 고육지책]

인구절벽 지자체, 기피시설 유치 나서

“생활-체류인구 늘면 지역경제 기여… 정부서 주는 각종 인센티브도 도움”

주민들이 나서 추진위 꾸리기도… “충분한 논의로 갈등 최소화를” 지적

“난민이라고 나쁜 사람이니껴. 얼른 오라 하이소.”

17일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만난 주민 김모 씨(62)는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군에서 추진하는 난민 정착 사업을 두고 “농번기마다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모셔 오는 판인데 아예 우리 지역에 정착시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미얀마는 농업국가라서 난민들이 금방 적응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지역 내 빈집과 폐교도 널려 있는데 여기 거주지를 마련해주면 일거양득 아니겠나”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영양군 인구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때 7만 명에 달하던 군민은 지난해 1만5000여 명까지 떨어졌다. 군 면적(815.10km2) 100분의 1에 불과한 여의도(8.4km2·지난해 2월 기준 약 3만3000명) 인구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을 만들어 꾸준히 난민을 받아들이면 인구 증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영양군뿐만이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5년에 한 번 정하는 인구감소지역은 전국 229개 시군구 중 89개로, 이들 지역 대부분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인해 기피시설 유치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다.

● 목사, 스님… 지역 종교계까지 유치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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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은 여자교도소를 유치하기 위해 올해 사업비 610억 원을 투입해 유치 후보지인 진보면에 수돗물 시설 확장 공사를 추진했다. 교도소 설치를 담당하는 법무부에 해당 지역 급수 환경이 개선됐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미 경북 북부 제1·2·3교도소와 경북직업훈련교도소 등 교정시설 4곳이 위치한 청송은 여자교도소까지 유치해 국내 최고 교정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2021년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윤경희 청송군수가 직접 유치를 건의했고 2023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게 공문을 전하는 등 4년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경북 상주시 상주향교에서 강영석 상주시장이 대구 군부대 이전을 촉구하는 상소문을 읽고 있다. 폭 76cm, 길이 173m의 상소문에는 군 부대 유치를 희망하는 상주시민 1만781명의 서명이 담겼다. 상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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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지역에서는 기피시설을 두고 여러 지자체가 유치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올 3월까지 대구 도심 내 군부대 이전 사업을 두고 경북 영천시와 상주시, 대구 군위군이 펼친 유치전이 대표적인 예다. 군부대 5곳과 공용화기 사격장까지 이전해야 해 넓은 부지가 필요하고 소음과 고도제한 문제가 우려되는데도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상주에서는 조선시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듯 지역 유림들이 도포에 갓을 쓰고 시민 1만781명의 서명을 담은 폭 76cm, 길이 173m 상소문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영천시에서는 목사, 스님 등 지역 종교계가 유치 지원에 나섰다. 결과는 군위군의 승리였다.

경남 거창군에서도 지난해 군립 화장장 유치를 위해 9개 마을이 경쟁을 벌였다. 마을 주민 동의율과 입지 등을 평가한 가운데 남하면 대야리 일대가 최종 선정됐다. 대야리 주민들의 시설 유치 동의율은 무려 97%에 달했다. 제주도에서도 2022년 폐기물 소각시설 등 환경기초시설을 공모로 선정했다. 3개 마을이 지원한 가운데 서귀포시 상천리가 최종 선정돼 현재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 금산군은 2023년 주민들이 직접 추진위원회까지 꾸려 서명운동을 전개한 끝에 양수발전소를 유치하기도 했다.

● 인구 유입에 지원금 시설 등 인센티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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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이 과거와 달리 기피시설 유치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심각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인구감소지역 89곳에는 기피시설을 유치한 지역들이 대부분이 포함된다. 지자체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 인구는 최근 3년(2021∼2024년)간 평균 3.6% 감소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기피시설 유치 시 생활·체류 인구를 늘려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교도소가 집적한 청송 진보면의 경우 인구 6300명 가운데 교정직 공무원만 1600여 명에 달한다. 공무원 가족까지 더하면 진보면 인구의 절반이 사실상 교도소 가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매년 3000∼5000여 명이 수감자를 보려고 지역을 찾아 상권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혐오시설 설치 시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제공하는 각종 인센티브도 주민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양수발전소를 유치한 금산군 등은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접 지원금 1400억 원이 교부되며, 연간 세수 23억 원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화장장 유치에 성공한 남하면은 주민 성과급과 화장장 수입을 받는다. 소각장을 유치한 제주 상천리도 260억 원 상당의 주민 편의시설과 매년 폐기물 반입 수수료 10%를 약속받은 상태다.

● “숙의 거쳐야 시설 설치 후 갈등 최소화”

다만 전문가들은 인구 증가와 각종 인센티브만을 보고 나섰다가 기피시설 가동 뒤 뒤늦게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중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기완 국립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치 전부터 충분한 숙의를 거쳐 주민들 향후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덴마크 코펜하겐은 소각장을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며 “기피시설을 잘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한다면 주민들의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영양=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거창=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금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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