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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전쟁과 경영]유럽의 안보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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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동맹 균열 속 안보 독립 난항

英·佛 핵우산, 러 대비 10%도 안돼

안보독립, 재정·복지에 새로운 과제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본부의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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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복지 천국이라 불리던 유럽이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의 부채한도를 상향시키면서 방위비 증액을 사실상 강제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 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유럽은 이제 '안보 홀로서기'에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럽 안보는 미국 의존도가 높았다. 영국 BBC에 따르면 전체 방위예산 및 전력 비용을 따졌을 때, 지난해 유럽방위에 미국이 쓴 돈은 1조달러(약 1454조원)였고, 나머지 유럽 내 나토 회원국들이 지불한 비용은 3000억달러(약 436조원)에 불과했다. 미국이 나토에서 갑자기 탈퇴하게 되면 유럽 안보는 큰 구멍이 뚫리게 되는 상황이다.

유럽국가들은 대서양 동맹체제를 가벼이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지만, 실제로는 미국만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 정부는 2006년 유럽국가들로부터 방위비 인상을 약조 받았다.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미국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국가들에 방위비를 최소 국내총생산(GDP) 대비 2%대는 책정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대다수 유럽국가는 이 요청을 거의 20년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지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에야 정비 한번 하지 않고 창고에 방치해뒀던 고장 난 유럽의 탱크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나토 탈퇴 위협은 앞으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한번은 보내야 할 영수증이었던 셈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또한 80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러시아는 과거 냉전 시기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위협하던 소련이 아니다. 소련의 자리는 중국으로 바뀌었고, 러시아는 오히려 중국을 배후에서 함께 견제해줄 파트너 국가로 인식이 변했다.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협상을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에선 이제서야 자강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난제가 산적해 있다. 미국이 제공하던 핵우산, 첨단무기 등을 일단 제외해도 물자보급, 항공, 인공위성 정보자산 등 눈에 보이지 않던 원조들까지 합치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체 보유한 핵무기로 미국을 대신해 유럽에 핵우산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만큼 강력한 억제력을 보여주긴 어렵다.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는 모두 합쳐야 500기 남짓인데 6000기 정도를 보유한 러시아의 8% 정도에 불과하다. 독일이나 다른 국가들이 지금부터 핵무기 보유에 나선다 해도 러시아에 대적하려면 수십 년은 걸린다.

난항을 겪고 있는 유럽의 안보 독립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맹 중인 모든 나라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군사동맹도 결국 상대국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자국의 안보는 결국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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