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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45세에 두 번째, 최고령 챔피언... 전설의 ‘KO 머신’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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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난투’ 조지 포먼 별세

조지 포먼이 1974년 10월 29일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 전날 계체량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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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탈환했던 복싱 전설 조지 포먼(76)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 휴스턴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었고, 빈민가에서 문제아로 자랐다. 스스로도 “폭력적 성향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절도를 하고 경찰에 쫓기던 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번민했고, 우연히 “당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직업 학교 광고를 보곤 진로를 정했다. 직업학교에서 만난 복싱 코치(닥 브로더스) 권유(“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복싱을 해보는 건 어떠니?”)로 운명적으로 글러브를 끼었다.

그의 인생에는 크게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정글의 난투(Rumble in the Jungle)’. 1974년 자이르(현 콩고)에서 무하마드 알리(당시 32세)와 맞붙었던 경기다.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다운시키며 벨트를 빼앗은 후 무적(40승 무패 37 KO승)을 구가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포먼이 이길 것이라 점쳤고, 혹시 알리가 맞다가 죽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전 세계 5000만명이 시청했던 세기의 대결.

조지 포먼(오른쪽)이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주먹을 겨누고 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워낙 치열해 ‘정글의 난투’라 불렸다. 포먼은 8라운드에서 알리에게 인생 유일한 KO패를 당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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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날렵한 몸놀림과 로프 반동(Rope-a-dope)을 활용해 포먼 강펀치를 피하면서 체력을 소모시켰다. 라운드가 지날수록 힘이 떨어진 포먼. 알리는 8라운드에 집중타를 날려 포먼을 링 위에 눕혔다. 포먼 선수 생활에서 유일한 KO패. 경기 후 포먼은 “주심이 카운트를 빨리 셌다” “주심이 뇌물을 받았다” 등 근거 없는 항변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그는 “그냥 알리가 더 강했다고 했어야 하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경기 이야기는 나중에 다큐멘터리(When We Were Kings)로 만들어져 1996년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21일 76세로 별세한 조지 포먼이 2023년 4월 LA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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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은퇴와 귀의(歸依). 알리와 재경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1977년 지미 영에게 의외의 판정패를 당하자 28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포먼은 이 경기 후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임사(臨死) 체험을 통해 종교에 귀의했다. 깨어난 포먼은 “다시 태어났어!”라고 외친 다음, 고향(휴스턴)에 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일하면서 1984년 지역 사회를 위해 ‘조지 포먼 청소년 센터’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걱정했다. ‘두 번째 조지(No.2 George)’라는 별명도 생겼다.

세 번째는 다시 찾은 챔피언 벨트. 1987년 그는 38세에 링으로 돌아왔다. 권투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자선 활동 등에 돈이 필요하다는 속사정도 있었다. 복귀 후 24연승을 거두고 42세에 당시 세계 챔피언 이밴더 홀리필드에게 도전했으나 판정패(12라운드). 45세였던 1994년 26세 마이클 무어러를 상대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경기에서 10라운드로 접어들 때까지 포먼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순간, 포먼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달아 작렬하면서 극적인 역전 KO승을 거뒀다.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헤비급 챔피언이란 영예도 챙겼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5년 챔피언 자리를 포기하고 두 번째 은퇴를 했다. 46세 169일이었다. 1997년 본인 이름을 딴 ‘조지 포먼 그릴’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상표권을 1억3750만달러에 팔았다.

45세이던 조지 포먼(빨간 글러브)이 1994년 11월 WBA-IBF 헤비급 통합 챔피언전에서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당시 26세)를 10라운드에 KO로 쓰러뜨린 뒤 승리를 선언받던 순간. 그는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 오늘밤 나를 보라”라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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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먼은 생애 초반엔 천부적 펀치력을 지닌 복서로 주목받았지만 나중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는 개척자로 인상을 심었다. “본성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알아냈어요. 어떤 사람이 될 건지는 스스로 선택한다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필생의 숙적인 알리와는 원수에서 친구로 변했다. “한때 알리를 거의 증오했어요. 복수하고 싶었죠. 하지만 친구가 됐고 아직도 그를 사랑합니다.” 포먼(76승 5패)은 알리(56승 5패)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고 더 위대한 전적(영국 BBC)을 남겼다. 알리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포먼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포먼은 12명 자녀, 알리는 9명을 뒀으며 둘은 신앙에서 아버지로서 삶까지 많은 것을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2016년 알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먼은 장례식에 운구자로 참석했다. “우린 1974년 싸웠고 1981년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이번 생애에 알리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습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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