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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일)

[일사일언] 김밥, 얼마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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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점심 먹으러 분식집에 갔다. 떡볶이(4500원)와 순대(5000원)를 시켜놓고 김밥 한 줄(5000원) 추가하니 1만4500원. 작년만 해도 이 정도면 1만원대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값이 올랐다. 이 가게만은 아닐 것이다. 분식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분식집에서 일할 때였다. 한 중년 손님이 들어왔다. “가장 싼 김밥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김밥은 5000원대부터 있어요. 속 재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라고 했다. 손님은 “왜 그렇게 비싸요?” 큰 소리로 말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강남역에 있는 분식집인데, 제일 싼 김밥이 5000원이래” 하며 가게를 나갔다. 당황스러웠다. 종업원인 내가 가격을 정한 것도 아닌데, 손님이 나에게 화를 낸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김밥은 오래전 한때 1000원대 가격으로 서민들의 한 끼 식사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울 강남에서도 3000원대 김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밥 한 줄을 시켜도 지갑 사정을 고려해야 할 정도다. 재료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문을 닫는 분식집이 늘었다. ‘저렴한 음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곳도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페에서 5000원짜리 커피와 8000원짜리 조각 케이크는 망설임 없이 사 먹는데 유독 김밥 값에는 인색하다.

김밥은 누군가에겐 든든한 한 끼이고 옛 추억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솔푸드로 자리 잡은 김밥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까 걱정이다. 정작 외국에선 김밥이 화제라고 한다. 넷플릭스에서도 인기 있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인지 미국 현지 마트에선 냉동 김밥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는 소식도 있었다. 김밥이 한국인의 솔푸드에서 세계인의 음식이 되는 상상도 해본다. 김밥이 커피나 케이크 못지않게 트렌디한 음식이 되는 건 좋은데 그때는 또 가격이 얼마가 될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윤진선 ‘어쩌다 강남역 분식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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