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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월)

“양념치킨도 한식이다”…‘관념의 틀’ 깬 한식계 이단아 [미담:味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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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1스타 소울의 윤대현·김희은 셰프 인터뷰

“한식, ‘한국의 식문화’를 아우르는 개념 ”

“소울, 손님과 ‘공감’ 할 수 있는 공간되기를”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미슐랭 1스타 컨템퍼러리 한식 다이닝 ‘소울’의 윤대현, 김희은 셰프. 채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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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이것은 한식을 가둔 ‘관념의 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린 때론 좁고 단단한 관념의 틀 안에 어떤 대상을 가둬놓곤 한다. 관념의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대상은 정의(定義)를 부정당한다. 존재하지만 정의할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스쳐지나칠 짧은 표현으론 단어가 내포한 끔찍한 의미를 우리는 좀처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식을 가둔 관념의 틀은 비좁고 견고하다. 그것은 ‘포지티브 규제’와 같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등 몇몇 음식만을 한식으로 하용한다. 그 외의 것은 한식으로 실격이다. 문화의 뒤섞임으로 수 많은 음식이 태어나고 있지만, 사회는 그것들을 한식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무언가일뿐.

그러다보니 웃지못할 해프닝도 일어난다. 과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은 한식세계화 지원 사업에 ‘양념치킨’이 들어가 있다고 분개한 바 있다. 그는 “양념치킨, 라이스치킨, 불고기 치킨 덮밥 등 이런 게 어떻게 우리 전통음식이냐. 우리가 언제부터 치킨을 기름에 튀겨먹었냐”고 질타했다. 이 사회가 얼마나 한식에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런 논리라면, 김밥과 부대찌개는 한식인가. 김밥은 일본의 노리마키에서 영향을 받은 음식이고, 미군이 남긴 소시지와 햄이 없다면 부대찌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음식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음식을 한식이라 부르는 데 우리는 거리낌이 없다. 양념치킨의 역사가 45년이다. 양념치킨은 왜 한식이 아닌가. 누구도 기준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만든 관념의 틀에 맞춰 판단할 뿐이다.

요리 중인 윤대현, 김희은 셰프. 채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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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퍼러리 한식 다이닝 ‘소울’의 윤대현·김희은 셰프는 한식을 가둔 관념의 틀을 깨고자 한다. 그들은 한식을 ‘한국의 식문화’라 정의했다. 문화는 수학문제처럼 딱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문화는 모호한 것이고, 경험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모호하기에 모든 걸 품는 포용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문화를 품은 새로운 미식도, 한식이 될 수 있다는 게 소울의 철학이다.

*윤대현 셰프는 초록색, 김희은 셰프는 갈색.

“한식은 말 그대로 ‘한국의 식문화’를 총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하나의 문화입니다. 정교한 기계처럼 딱 떨어지는 수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식을 틀에 넣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고추장이 한반도에 유입되기 전에도 떡볶이는 존재했어요. 하지만, 그것만을 한식이라 여기지 않아요. 해외 문물에 섞여 들어온 고추를 이용한 현재의 떡볶이 역시 한식으로 인정받지요. 그렇다면, 현재의 크림떡볶이라든지, 마라떡볶이 등도 한식이지 않을까요.”

한식의 전통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한식의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김희은 셰프는 한식을 전공한 만큼, 전통 한식에도 해박한 지식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 전통을 보존하는 한편, 한식의 진화가 개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희가 방향을 고민할 때, 조희숙 선생님께서 제게 했던 말이 있어요. ‘민족의 고유의 것은 보존하는 한편, 한식의 다변화와 재해석에 있어서 셰프의 창의성과 열정과 사기를 꺾어선 안 된다’고 말이에요. 한식의 대가께서도 이토록 개방적인 철학을 가지고 계시다는 게 저희에게 큰 울림이 됐어요.”

소울의 ‘각양각색(各樣各色)’
한식의 해방을 지향하는 소울이 해방촌에 있는 건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문을 연 소울은 4년만인 2023년 미슐랭 별에 올라 올해까지 3년 연속 유지하고 있다.

소울의 ‘맞이음식’.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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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의 ‘맞이 음식’은 한국의 장 된장, 간장, 고추장을 이용해 한국의 색을 담았다. 소울의 로고를 형상한 목기 위에 담은 이 음식은 외형부터 손님을 매혹시킨다. 구운딸기와 히비스커스 베일을 올린 육회는 루비같은 붉은 색이 돋보인다. 참외피클과 돼지감자퓨레를 담은 쑥 흑임자 슈, 훈연한 초콜릿과 가루된장을 입힌 마 위에 캐비아와 더덕·고구마 퓨레를 올린 바이트는 단맛, 짠맛 위에 한국의 향이 감싼 음식으로 인상이 깊었다.

소울의 ‘꽃단장’.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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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장’이란 이름의 요리는 한식의 ‘대하 잣즙 냉채’에서 영감을 받아 재해석한 요리다. 훈연한 홍새우의 감칠맛에 잣들깨소스를 더해 풍미를 살렸다. 여기에 동서양의 맛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마늘쫑 장아찌로 산미와 식감을 잡았다. 가장 윗쪽에는 장미꽃을 형성화한 계절과일을 올렸다.

소울의 ‘Mrs. 김전복’.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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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의 메뉴에는 위트가 스며들어있다. ‘Mrs. 김전복’이 그렇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이름의 요리는 전복과 김의 조화가 돋보이는 김희은 셰프의 시그니쳐 메뉴다. 무와 다시마를 감싸 쪄낸 전복에 타임으로 훈연향을 입힌 후 다시 한번 유장을 덧발라 한식의 색을 입혔다. 곱창김 마스카포네로 파도를 형상화했고, 비네그렛으로 버무린 은이버섯은 파란 해변의 향을 뿜어낸다. 전복내장을 이용한 감칠 맛 깊은 게우소스와 백다시마까지 더해 바다의 맛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소울의 ‘감자전’과 ‘구운증편’.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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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은 돼지기름에 서서히 지져낸 이탈리안식 뇨끼다. 가운데 부분은 무장아찌와 사과렐리쉬로 산미를 주었고, 윗쪽으로는 다른 맛과 모양의 칩으로 크리스피한 식감을 냈다. 소스를 들기름 베이스의 아이올리와 트러플 베이스의 아이올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구운 증편’은 막걸리를 발효해 만든 술떡과 증편을 서양의 식전빵인 샤워도우와 연관지어 3가지 맛 버터와 함께 제공한다.

손님과 공감하는 공간, 그곳이 ‘소울’

소울의 윤대현. 김희은 셰프. 둘은 부부이자 가장 든든한 동료다. 한식을 전공한 김희은 셰프와 양식을 공부한 윤대현 셰프는 서로의 색을 섞어 그들만의 한식을 만들고 있다. 채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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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김희은 셰프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건 쉽지 않았다. 요리사의 길을 반대했던 가정사, 경제적 어려움, 본인들만의 색을 찾기 위한 끝없는 고뇌의 과정이 있었다. 소울 오픈 초창기에는 업장 한 켠에서 하루 2시간만 자고 일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하루 6시간 이상 자지 않고, 요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윤대현·김희은 셰프는 소울이 손님과 셰프가 ‘공감’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대화를 통해서뿐 아니라 음식을 통해서도 손님의 마음에 다가가고자 한다.

“소울 이름에는 ‘혼’을 담은 정성스런 음식이라는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풀어헤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겼습니다. 손님과 셰프가 공감대를 형성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님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공감하려 해요. 음식에도 그런 장치가 있어요. 예컨대, 손님의 옷 색깔에 맞춰 젓가락을 세팅을해요. 작은 부분이지만, 손님들은 자신들의 세세한 부분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기뻐하세요. 음식을 맛본 후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를 물어보곤 해요. 음식에 대한 피드백도 있지만, 손님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저희의 접근법이기도 해요.”

소울의 내부 전경. 미슐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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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앞으로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앞장서고자 한다. 나아가 셰프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후학양성에도 뜻을 가지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을 위해 이제 쉼표가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셰프로서는 해외 진출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좋은 셰프를 양성하는 데도 일조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기술적인 것뿐 아니라 이 생태계에서 성공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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