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예술의전당·오페라 ‘루살카’ 세 주역
9년 만의 韓 공연 서선영ㆍ박종민ㆍ손지훈
오페라 ‘루살카’ 소프라노 서선영, 바리톤 박종민, 테너 손지훈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숲의 정령’들이 모여 재잘거리는 깊은 숲속 어느 호수. 이곳을 수호신처럼 지키는 신비로운 나무 위에 아름다운 루살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 왕자’를 사랑해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루살카. 그 어떤 욕망보다 강력한 ‘사랑의 마음’에 자신을 내건 위험한 거래는 비극의 전조가 된다.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오페라 ‘루살카’다.
“오페라 버전의 인어공주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무형체의 자연이 인간이 되고 싶어 자신의 목소리와 맞바꾸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달라요. (웃음)” (서선영)
드보르자크는 유럽 전역에서 전해지는 다양한 ‘물의 요정’ 이야기에 안데르센 동화를 엮은 익숙한 스토리의 원작를 토대로 오페라를 썼다. ‘2025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3월 14일, 예술의전당)를 통해 막을 올리는 ‘루살카’ 공연을 앞두고 만난 세 주역 서선영(41)ㆍ박종민(38)ㆍ손지훈(35)은 “아름다운 선율과 귀에 거슬리지 않는 이국적 언어, 쉬운 스토리”를 ‘루살카’의 매력으로 꼽았다.
‘루살카’는 드보르자크가 1901년 작곡, 그의 오페라 중 유일한 성공작이다. 서선영은 “드보르자크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쓴 곡으로 완성도 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오페라”라고 귀띔했다. 특히 루살카가 부르는 아리아인 ‘달님에게 부치는 노래’는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 대중적으로도 알려졌다.
오페라에서 서선영은 ‘물의 정령’ 루살카를, 박종민은 ‘루살카의 아버지’이자 ‘영생의 존재’인 도깨비 보드닉을, 손지훈은 루살카가 사랑한 ‘문제적’ 왕자를 연기한다. 서선영과 박종민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번이 세 번째 만나는 ‘루살카’다. 손지훈은 ‘루살카’와의 첫 만남이다. 지휘는 데이비드 이, 연출은 표현진이 맡았다.
지난달 베를린국립오페라에서 ‘루살카’ 무대에 선 박종민은 “유럽 무대에선 ‘루살카’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해 무대에 올리고 있다”며 “베를린에선 루살카과 보드닉을 연인으로 설정, 현대적으로 각색한 공연을 마쳤는데 이번엔 원작 그대로인 무대라 더 편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살카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에서 ‘루살카’ 공연이 오르기 쉽지 않은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세 사람은 “생경한 체코어”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인구 1000만 명이 사용하는 체코어로 적힌 ‘루살카’는 늘 이탈리아어, 독어, 불어로 노래하는 국적 불문 모든 성악가들에게도 ‘도전적인 작품’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루살카’를 처음 만났을 당시 체코어 선생님과의 과외를 통해 ‘완벽한’ 발음 구사에 긴 시간을 쏟았다. “발음이 입에 착 달라붙어야 노래를 편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식 ‘R’ 발음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수준 차이가 나는데, 오페라를 처음 공부할 때 이 발음을 배우는 데에 수주의 시간이 걸렸어요. 체코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R’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요.” (박종민)
‘루살카’를 처음 만나는 손지훈에게도 어려움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워낙 전 세계에서 만이 올리는 오페라이기에 지금까지 했던 오페라 중 가장 많은 레퍼런스를 봤다”며 “하지만 정작 체코 사람들이 노래한 버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고충을 들려줬다.
그럼에도 서선영은 “이국적인 언어이나 귀에 거슬림 없이 들리는 문장들이 선율과 어우러지니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아리아가 많다”고 했다.
‘루살카’의 가장 강력한 힘은 ‘음악’이다. 드보르자크의 오페라는 국민악파 시대의 대표 작곡가인 그의 음악색과 보헤미아 정서를 담으면서도 작곡가 바그너의 영향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서선영은 “이 오페라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오페라에서 특정 인물이나 상황과 결부돼 반복 사용되는 짧은 주제나 동기)가 바그너의 오페라와도 결을 같이 한다”고 했다. “루살카가 등장할 때 나오는 파도를 치는 듯한 하프 소리, 왕자가 등장할 때 들리는 금관, 마녀 예지바바만의 등장 선율이 특징적이라는 것이다.
손지훈은 ‘루살카’는 베리스모 오페라 시대의 작품이나, 음악 구성에서 다른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그는 “베리스모 오페라는 대개 아리아가 끝나면 음악이 멈추고 관객이 박수를 치고 넘어가는데, ‘루살카’는 음악의 끊김을 최소화했다”며 “아리아와 전체 음악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도 큰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오페라 곳곳에선 동유럽의 자연경관을 담아낸다. 서선영은 “전조와 반음 기법을 통해 파도가 치는 모습 등 대자연과 변화무쌍한 날씨를 표현하고, 정령들의 모습에선 풍부하고 두터운 화성을 쓰기에 누구나 음악적 아름다움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민도 “춥고 해가 적은 동유럽의 호수를 배경으로 한 만큼 ‘루살카’는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반짝거리며 빛을 발산하기 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며 “자연의 각 요소를 화성과 조성의 변화를 통해 생생하게 표현한 오페라”라고 했다.
오페라 ‘루살카’ 소프라노 서선영, 바리톤 박종민, 테너 손지훈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만 성악가들에겐 ‘산 넘어 산’이다. 워낙 난곡인 데다 동화이자 신화같은 스토리에 개연성을 불어넣기 위한 감정 연기가 더해져야 하다 보니 어지간한 기량의 성악가가 아니고선 ‘오르기 힘든 산’이다. 모두에겐 상당한 난이도와 고음역대의 아리아가 주어진다. 게다가 박종민은 “음역대가 높은 아리아 이후 합창단과 함께 부르는 곡으로 넘어가다 보니 모두 잘 소화하지 않으면 오페라 전체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루살카’는 캐스팅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선택을 하는 것도, 선택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오페라다.
서선영은 대한민국 ‘유일의 루살카’다. 2016년 ‘루살카’ 한국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그가 루살카로 낙점됐다. 박종민은 “워낙 음악도 연기도 어려운 작품이라 주인공 루살카를 서선영 선생님처럼 잘할 수 있는 소프라노를 찾기가 어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선영의 루살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연약한 인어공주와는 다르다. 그는 “1막에선 인간이 되기 위해 유아적으로 떼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2막에 접어들면 왕자에게 버림받은 원망과 절망이 드라마틱한 음악과 함께 폭격처럼 쏟아져 표현에 있어선 더 수월하다”며 웃었다. 목소리를 잃는 캐릭터라 2막 중반 이후까진 그의 아리아는 나오지 않지만, 서선영은 “다른 오페라보다도 소프라노 아리아가 더 많은 편”이라며 웃었다.
루살카와 모두의 비극을 초래할 ‘문제적 왕자’ 손지훈은 “왕자를 특정한 인물로 보기 보다는 인간의 본능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했다”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등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표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줄타기’였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표현하되 왕자로의 위엄 역시 비춰야 하기에 적당한 ‘절제미’가 필요해서다. 루살카의 비극적 운명을 지켜보는 아버지 보드닉을 연기하는 박종민은 “비통한 심경과 인간 왕자를 향한 분노”를 동시에 보여준다.
사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두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박종민과 서선영이 2011년 각각 남녀 우승자로, 2023년엔 테너 손지훈이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 성악가들의 만남은 호흡도 좋다. 서선영은 “아빠 역할을 하는 데에 완벽한 따뜻하고 둥근 소리를 가진 (박)종민씨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레체로 테너인 (손) 지훈씨에게 음악과 테크닉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배우는 시간이 되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세 사람은 “만약 ‘루살카’가 체코어가 아닌 성악가들에게 보다 친숙한 언어로 만들어졌다면 한국에서도 더 많은 무대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음악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다 덮는 오페라”라고 했다.
“1901년 쓴 이 작품은 신의 시대를 지나 인간이 주체가 된 이후 인간의 감수성을 전면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오페라의 마지막 음표까지 연주된 뒤엔 저희와 함께 눈물을 흔리게 되는 무대일 거예요. 10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현대인의 감정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박종민)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