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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홈플러스 사태 "신용등급 하락 알았냐, 몰랐냐"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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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LIG 사태 주목…'회생신청' 결정된 시점에 집중해야

2025.3.1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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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을 언제 알았냐는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홈플러스가 '공시 사흘전' 신용등급 하락을 통보받았다는 사실이 지난 12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신용등급 하락을 알고도 자금 조달을 계속해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커졌다는 의혹에 불을 붙이는 보도였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사실 등급은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용등급이 떨어진다고 회사가 망하는 게 아니다. 회사 건전성이 낮아진 만큼 투자 수요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자금 조달은 계속 가능하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처럼 신용등급이 떨어졌는데도 자금 조달에 성공해 다시 등급이 오르는 사례도 있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회생이 시작되면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된다. 그간 홈플러스에 자금을 조달했던 투자자들이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시작된다.

결국 의혹의 핵심은 '회생을 계획하고도' 단기채를 발행했느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적으로 회생 이야기가 나온 이후 자금 조달을 했느냐를 봐야한다"며 "회생을 준비한 순간부터 기업어음, 단기채 발행 같은 건 그 어떤 것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11년 'LIG 사태' 주목

14년 전 'LIG 사태'가 있었다. LIG건설은 2011년 3월 21일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문제는 회생 신청 열흘 전까지도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터져나왔고, 금감원의 조사가 시작됐다.

금감원은 LIG건설이 '회생 신청을 결정한 시점'에 주목했다. 만약 LIG건설이 기업회생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면서도 CP 발행을 강행했다면 자본시장법 178조(부정거래행위 금지)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감원 조사국은 LIG건설이 회생 신청보다 한달여 앞선 2011년 2월 25일, 내부적으로 회생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 이날부터 실제 회생 신청 때까지 판매한 CP 발행금액 242억여원을 부당이득으로 판단해 검찰 고발했다.

당시 금감원은 "괜찮다"는 LIG건설의 말만 믿고 CP 판매에 나선 증권사에도 중징계를 내렸다. 당시 증권사는 "본인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금감원은 CP 판매 과정에서 투자위험에 대한 직원들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홈플러스가 회생을 결정한 시점은?

홈플러스는 "예상치 못한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긴급히 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생을 결정한 시점은 '신용등급 하락 이후'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신용평가사로부터 등급 하락을 '최종 통보' 받은 날짜를 2월 27일로 밝혔다. 홈플러스 관련 단기사채(ABSTB)가 마지막으로 발행된 때는 2월 25일로, 날짜만 놓고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홈플러스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 때문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홈플러스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져서다.

통상 회생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선택'으로 인식된다. 신규 자금 조달이 막히고, 경영권까지 박탈될 가능성이 있어 회사 입장에서도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한다.

"정말 기업회생이 신용등급 때문일까?" 기업회생은 신용등급 하락과 상관없이 이미 이전부터 고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도 제기된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회생을 결정했다는 건 쉽게 납득이 안 된다"며 "등급이 떨어져 자금 부족을 겪는다 해도 워크아웃(채권단 자율조정)부터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고 말했다.

선택엔 책임 따라야

홈플러스의 회생신청 자체를 비판할 의도는 없다. 홈플러스의 주장대로 '부도'라는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훗날 '선제적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선택으로 홈플러스를 믿고 수천억원을 투자한 개인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적어도 이 선택의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는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선택의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금감원은 지난 12일 홈플러스 관련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홈플러스의 ABSTB 규모는 약 4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3000억 원 이상이 일반 개인·법인 투자자에게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10여 년 전 LIG 사태도, 이번 홈플러스 사태도, 결국 핵심은 기업회생이 언제 결정됐느냐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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