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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창 “소비” 31번 외쳤지만…경제 반전 불러올 파격 제시 못한 ‘양회 극장’[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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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수 진작’ 의지 보였지만

2년 연속 총리 기자회견 없이 폐막

중국 경제 둘러싼 의문 해소 못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인민정치협상회의 폐막식 자리에 앉아 있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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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지난 11일 막 내린 올해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투자자의 발길을 돌릴 만한 ‘심리적 자극’을 주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고 지도자’의 의지를 확인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13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전날 리창 총리 주재로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올해 업무분장 내용을 담은 ‘국무원 2025년 중점 공작 분장 방안’을 통과시켰다. 양회 결정사항을 빠르게 이행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리웨이 중국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소 부연구원은 “양회 폐막 후 국무원 상무위원회가 바로 소집된 것은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긴박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의 긴박감은 양회 기간 내내 확인됐다. 리 총리가 지난 5일 전인대 개막식 연설에서 ‘소비’를 31번 언급한 것이 상징적이다. 올해도 5% 성장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정부는 ‘내수 진작’을 올해 업무 1순위로 제시했으며 정부 부채를 늘려 경기 부양에 쏟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양회 기간 장관들이 주축이 된 기자회견도 여러 차례 열렸다. 31년 동안 이어지던, 양회 마지막 날 국무원 총리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관례가 지난해 중단됐다. 전인대 측은 장관 등 실무자들의 기자회견을 늘려 내·외신을 상대로 중국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과 권한에 한계가 있는 장관 기자회견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국무원 업무보고 가운데 4대 국유은행을 대상으로 한 5000억위안(약 100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이 ‘조용히’ 포함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는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을 강타한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지방정부 재정 위기가 금융안정까지 흔들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직후 일본 정부도 실시한 정책이었다. 중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98년 공적자금 투입 전 주룽지 당시 총리가 양회 폐막 기자회견을 포함해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했던 것과 대조적이라고 짚었다. 주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부실 국유기업 정리와 부패 단속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100개의 관을 준비해둬라. (99개는 부패 관료들의 것이고) 그중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란 명언도 기자회견 과정에서 나왔다. 이를 토대로 아시아 시장 전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중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있었다.

시장 관찰자들과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 지도자의 의지’라고 말한다. 지난해 부양책 선회가 늦었던 것은 ‘부동산 부양’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장기적 개혁’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생각을 늦게 바꾼 영향이라는 해석이 있다. 중국 지도부도 나라 안팎의 시선을 잘 알고 있다. 지난달 17일 시 주석이 6년 만에 민간기업 수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중국 안팎에 ‘최고 지도자가 민간경제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단적이다.

현재 중국 정부가 처한 전방위적 불확실성을 진화하려면 리 총리의 연설이나 관영매체의 보도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만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역사상 처음으로 주택시장·증시 안정이 정부 업무보고에 포함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중국 정부는 (부동산 버블을 부르는) 시장을 띄울 의지는 분명히 없다. 지방정부 부채 관리를 해야 하는 국면인 것은 맞지만 그 방만한 투자가 지방 성장 동력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수 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의문이었지만 아직 당국의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온 적은 없다. 지난해 9월 부양책 이후 심리를 반영하는 증시 지표는 상승했지만 본격적 소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은 계속된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2%에 그친 상황에서 시 주석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의 심각성을 아직 잘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 기간 국민당이 인플레이션으로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으며 개혁·개방 이후 고도성장 과정에서 고물가의 위험만 겪어 봤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워낙 커서 지도부의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한 때였다. 이번 양회에서 최고 지도부는 부각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리 총리 기자회견은 2년 연속 중단됐다. 시 주석은 2023년 전인대 폐막식에서는 연설했지만 올해는 지난해 이어 2년 연속 연설하지 않았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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