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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3 (목)

백악관 앞은 공사판… 트럼프 ‘눈엣가시’ 이것 없애는 중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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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광장 철거

워싱턴DC 중심… 트럼프, 과거 “증오의 상징”

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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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북쪽 라파예트 광장 부근 거리가 평소보다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 차를 타고 500m를 이동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소요되며 곳곳에서 경적이 울렸다. 경찰 통제 아래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쪼그려 앉아 드릴로 아스팔트를 뚫고 석재 볼라드(자동차 진입을 막는 구조물)를 제거하고 있었다.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광장이라고 불려온 이곳을 ‘리버티(Liberty·자유) 광장’으로 바꾸는 공사다. 지난 10일 시작된 공사는 완공까지 약 6~8주 소요된다. 현장에선 흑인 민권 활동가들이 ‘트럼프는 BLM을 결코 지울 수 없다’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항의 시위 중이었다. 볼티모어에서 온 시위대원 알리샤씨는 “이 공사는 앞으로 트럼프 4년 동안 미국에서 흑인들이 어떤 대접과 차별을 받을지 보여주는 예고편”이라며 “그가 말하는 미국에 우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약 400m 떨어진 16번가 두 블록은 한때 흑인 인권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2020년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자신을 단속하는 백인 경찰관에게 목이 눌려 사망하고 당시 현장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BLM’ 구호를 외치는 시위가 확산됐다.

흑인 지지가 높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아성 워싱턴 DC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 흑인 여성 정치인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 DC 시장은 15m 길이 도로 바닥에 노란색으로 BLM 문구를 칠하게 했다. 예산 400만달러(약 58억원)를 들여 일대를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지정하고 일대를 ‘BLM 광장’으로 명명했다. 당시 뉴욕 등 진보세가 강한 대도시에서 시 당국이 앞장서 시위를 지지하는 흐름에 올라탄 것이다.

2021년 5월 13일 워싱턴 DC 16번가에 있는 BLM(Blacl Lives Matter) 광장 전경.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시위 이후 워싱턴 16번가의 두 블록 구간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문구 그려졌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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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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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백악관 주인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격분했다. BLM 주도 단체들을 겨냥해 “증오의 상징에 돈을 쓰는 대신 범죄와 싸우는 데 돈을 쓰길 바란다”고 했다. BLM은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혔다. 트럼프는 시위가 과격해지고 있다는 이유로 현역 군인을 투입해 진압하려 했지만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 등이 반기를 드는 등 행정부 내 갈등이 표출됐다. 흑인 여성 카멀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로 흑인 표심이 대거 결집하면서 트럼프는 그해 11월 대선 패배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당시 워싱턴 DC에서 바이든 지지자들의 대선 승리 자축 파티가 벌어진 곳도 BLM 광장 자리다.

BLM 광장의 철거는 지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사회적 가치로 꼽혔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의 극적인 퇴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연방정부·주정부·학교 등 공공기관은 물론 일선 기업에까지 여성·소수인종·성소수자 등 소수 계층의 권익을 적극 보호하는 DEI 정책의 도입과 실행을 독려했다. 기관마다 DEI 전담 부서를 만들고 전담 인력을 채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백인·남성·주류 엘리트에 대한 역차별이고, 능력보다 출신 성분을 따지는 불공정이라는 반발이 보수층으로부터 일었고, 트럼프는 DEI 철폐를 대선 공약으로 앞세우며 이들의 표심을 흡수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 취임하면서 연방정부 기관의 DEI 프로그램을 모두 폐지하고, 남성·여성 외 다른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DEI 척결’에 나섰다. 취임 50일 동안 발표한 DEI 관련 행정명령만 15개다.

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흑인 활동가들이 여기에 항의하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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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 일대 도로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는 문구를 들어내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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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는 인종·성별에 따른 소수자 배려책을 모두 없앴고, 현역 복무 중인 1만4000여 명의 성전환 군인에 대한 강제 전역과 추후 입대 금지에 나섰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합참의장으로 취임했던 찰스 브라운을 전격 경질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 해군참모총장인 리사 프란체티 제독을 포함한 군 수뇌 5명에 대한 교체도 지시했다. 트럼프는 법무부에 “민간 부문의 DEI 특혜와 정책을 조사해 불법성이 확인될 경우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부 스포츠 출전을 금지했다.

동시에 미국의 주류인 백인과 기독교계를 배려하는 성격이 강한 조치도 취해졌다. 트럼프는 “기독교에 대한 편견·차별을 뿌리뽑겠다”며 반(反)기독교 편견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 백악관 신앙실 설치를 지시했다. 또 미국의 공용어를 영어로 규정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는 ‘그동안 미국 사회를 이끌어온 다수·주류가 DEI라는 무기에 의해 부당하게 탄압받아왔다’는 트럼프의 인식이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 4일 취임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DEI 척결’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DEI 폭정은 끝났다”면서 “어느 분야든 인종이나 성별이 아닌 기술과 역량에 따라 고용되고 승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방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열거하면서 “듣도 보도 못한 아프리카 나라 레소토의 성소수자 권리 증진에 800만 달러가 책정됐다”며 해외 원조 사업과 DEI를 싸잡아 공격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반 DEI 기조에 맞춰 기업들도 줄줄이 관련 부서를 없애고 해당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아마존·골드만삭스·구글 등 다수의 대기업이 DEI 조직을 없애거나 관련 정책의 폐기·수정에 나섰다.

☞BLM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의 줄임말로 흑인이 주도하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뜻한다. 2012년 플로리다에서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강도로 오인해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자율방범대원이 무죄 판결을 받은 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후 미주리주·뉴욕주·미네소타주에서 흑인이 경찰 단속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시위의 규모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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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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