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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 (수)

이슈 물가와 GDP

월급쟁이 세금, 기업 육박…‘물가연동세’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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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다시 키운 논란



“월급쟁이가 봉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가연동 소득세’ 논의에 불을 지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소득세 과세표준(과표)을 올려 세금 부담을 줄여주자는 얘기다. 해묵은 논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주제다. 기획재정부는 “감면한 세수를 어디서 채울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다. 전문가는 물가연동 소득세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과표나 면세자 비중을 함께 조정하지 않으면 감세 포퓰리즘이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법인세 수입이 줄면서 소득세와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게 발단이었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61조원으로 늘어난 반면 법인세수는 62조5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전체 세수에서 월급쟁이가 내는 소득세 비중이 기업이 내는 법인세 만큼 커진 것이다.

이를 두고 지난 19일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소득세 개편을 주장했다. 20일 민주당의 임광현 의원도 16년간 그대로인 기본공제 금액을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통한 실질세 부담을 낮추자는 의견을 냈다. 이 대표 직속 기구인 월급방위대(위원장 한정애)는 다음달 초 구체적인 소득세 개편안을 도출하기 위한 집담회를 열기로 했다.

실제 멈춰 있는 과표는 ‘소리 없는 증세’라 불린다. 하지만 기재부는 2008년부터 유지하던 소득세 과표 구간을 15년 만인 2023년에야 수정했다. ‘1200만원 이하’ 구간을 ‘1400만원 이하’로, ‘4600만원 이하’를 ‘5000만원 이하’로 각각 올렸다. 하지만 과표 ‘8800만원 초과’ 구간은 바꾸지 않고 17년간 유지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2개국이 이미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물가지수(CPI)의 누적 증가율을 반영한 ‘생계비지수’를 기준으로 소득세 기준을 책정한다. 과표뿐 아니라 각종 공제 항목에도 물가를 연동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CPI 누적 증가율이 5% 이상일 때 소득세를 조정한다.

하지만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물가연동을 어디까지 할 건지부터 문제”라며 “과표만 할 건지, 인적 공제도 물가에 연동할 건지, 자영업자가 주로 내는 종합소득세는 놔둘 건지 등 조세의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는 복잡한 문제”라고 토로했다.

제도의 ‘역진성(소득이 적은 사람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늘어나는 것)’도 딜레마다.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고소득자 위주로 세수 감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과표를 바꾸면 적어도 현행보다 연 10조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측된다.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세출을 줄이거나 다른 세원을 발굴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 2023년 기준 한국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33%인데,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면 이 비율이 더 오를 수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과표 체계와 과도한 공제 체계도 함께 고쳐야지 물가연동 소득세만 도입한다면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물가연동제를 추진하되 면세자 비율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소득세를 감면받더라도 최소한의 세금은 내도록 하는 등 전반적인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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