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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 (화)

갑상선암 진단받은 배전노동자…대법, 처음으로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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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주 복구 작업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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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전노동자로 일하다가 갑상선암에 걸린 노동자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배전노동자 김정남(56)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했다가 패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씨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만이다.



김씨는 약 18년 간 전기가 흐르는 전신주에서 송·배선전로 유지·보수 작업을 했다. 김씨는 근무일마다 전봇대 20~30개의 기자재 교체를 하거나 전봇대 8대 정도의 전선 교체 작업을 했다. 그러던중 김씨는 2015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김씨는 ‘상시적으로 2만2900V의 특고압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극저주파 전자기장 등 전자파에 노출됐고, 전기를 만진다는 강박감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갑상선암이 발병했다’며 이듬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극저주파 자기장과 갑상선암 발생관의 인과성에 대해 뒷받침할 연구가 부족하다’며 산재 승인을 거절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김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김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업무로 인한 발병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김씨의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의 인과관계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 영향 등을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은 “산재 제도의 목적과 기능에 비춰 봤을 때,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곤란해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며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더라도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갑상선암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봤다. ‘배전전기원이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 갑상선암 발병률이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다’는 공단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김씨처럼 직접활선 공법(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자가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전선을 만지며 작업하는 방식)으로 십수년 동안 일했던 근로자의 수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연관성이 규명되지 않더라도 장기간 전자기장에 노출된 것이 신체 상태에 악영향을 줘 갑상선암 발병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을 가능성과 작업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에 미쳤을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건설노조는 선고 이후 성명을 내어 “(김씨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 만의 판결로, 재해노동자가 느꼈을 고통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일하다 다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도리어 산재를 불승인하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승인이 늦어지게 만들었다. 공단에 신속하고 공정한 재해보상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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