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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토)

美가 5년간 칩·장비 제재했는데… 中 ‘고성능 AI’ 딥시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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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이런 AI 만들었나

그래픽=김현국·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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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최신 AI 모델 ‘R1’을 지난 20일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압도적 AI 패권’을 강조하던 때였다. 민주당·공화당 정권을 불문하고 지난 5년 동안 이어진 미국의 전방위 ‘AI 봉쇄’를 뚫고 중국이 고성능 AI를 만들었다고 선언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과 함께 700조원을 투입해 초거대 AI 인프라를 건설하겠다는 ‘스타게이트’를 발표했지만, 미국 테크 업계는 오히려 ‘딥시크 쇼크’로 혼란에 빠졌다. 중국의 AI 파워가 미국 대(對) 중국,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국가 간 전개될 AI 전쟁의 새 막을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털인 ‘앤드리슨호로위츠’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지난 26일 X에 딥시크의 등장으로 인한 충격을 “AI의 ‘스푸트니크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옛 소련이 1957년 예상을 깨고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해 미국이 큰 충격에 빠졌던 때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딥시크, 어떻게 대중 제제 뚫었나

미국은 중국이 강력한 제재를 뚫고 고성능 AI를 개발한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딥시크는 지난 22일 공개한 ‘기술 보고서’에서 엔비디아의 비교적 저렴한 저사양 반도체 ‘H800’ 2048개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H800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대중 제재를 피해 중국에 판매하기 위해 사양을 낮춘 것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미국 테크 업계 관계자들은 저사양 반도체로 고성능 AI 개발에 성공했다는 딥시크의 설명을 믿을 수 없다면서 딥시크가 비밀리에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를 몰래 확보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딥시크는 기술보고서에 AI 개발에 미국 기업보다 훨씬 적은 돈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 테크 업계에선 량원펑이 딥시크 창업 전에 경영한 AI 기반 투자사인 ‘환팡량화’ 때부터 이뤄진 반도체 투자 등도 비용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팡량화’는 ‘AI 투자’라는 신기술을 토대로 국가 첨단 기술기업으로 분류됐다. 당시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과 연구 지원금을 적잖이 받았다고 알려졌다. 량원펑은 2019년 투자회사 산하에 AI 연구 기업 ‘환팡 AI’를 설립했다. 그리고 10억 위안(약 2000억원)을 투자해 당시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 ‘A100’을 1만개 사들였다. 량원펑의 회사는 중국에서 드물게 A100을 대량 보유한 회사였는데, 이런 설비 투자가 딥시크의 고성능 생성형 AI 개발의 기반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IT 업계에선 딥시크가 중국 화웨이(반도체 설계)와 SMIC(반도체 위탁생산)가 손잡고 구형 장비로 만들어낸 중국산 AI 반도체 ‘어센드(Ascend)’를 대량으로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화웨이가 2022년 내놓은 이 반도체는 미국의 수출 통제에 대응해 개발한 제품으로, 민·관이 협력한 중국의 기술 자립 노력을 상징한다. 2023년 나온 ‘어센드910B’의 경우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A100’의 80% 수준이면서 가격은 3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AI 연구자는 “작년에 공개된 화웨이의 신형 AI반도체 ‘어센드910C’도 중국의 7대 AI 생성형 모델 회사인 딥시크에게 우선적으로 공급됐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中 1세대 빅테크가 구축한 AI 생태계

미국은 중국에 반도체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데이터·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의 수출도 통제해 왔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지침에 충실한 1세대 빅테크 기업들이 구축한 AI 생태계가 딥시크 개발의 토양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텐센트·알리바바는 딥시크 AI ‘훈련’을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딥시크는 느슨한 중국의 개인정보 보호법 아래 더우인(소셜미디어), 웨이신(모바일 메신저), 타오바오(전자상거래) 등 중국 인터넷 플랫폼을 쓰는 14억명의 사용자 데이터도 어렵지 않게 확보해 AI 구축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개인정보 규제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미국·유럽·한국 등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딥시크뿐 아니라 다른 중국 기업들도 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IT대기업 알리바바는 지난 29일 새로운 AI 모델 ‘Qwen(큐원) 2.5 맥스’를 출시하며 “오픈AI의 GPT-4o(포오), 딥시크의 V3, 메타의 라마 3.1을 거의 모든 영역에서 능가한다”고 발표했다. 틱톡의 모회사인 중국의 바이트댄스는 자사 주력 AI모델을 업그레이드한 ‘도우바오-1.5 프로’를 최근 출시했다. 바이트댄스에 따르면 이 모델은 오픈AI의 GPT-4o, 앤스로픽의 클로드 3.5 소넷 등 최신 모델과 비교했을 때 복잡한 명령 이해, 수학적 이해 및 이미지 분석 등 다양한 항목에서 모두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선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뚫고 고성능 AI를 개발해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 일관된 국가 기술 전략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장쑤성에서 젊은 연구·개발 인력들을 만나 “10년 동안 칼을 가는 집념을 발휘하라”고 했고, 중국은 2010년 국가 계획에서 발표한 IT·로봇·전기차·우주항공 등 전략 산업 리스트를 16년째 유지하고 있다. 베이징의 테크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첨단 기술 발전은 이미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미국이 제재를 세게 하는 분야일수록 정부 지원이 늘어나는데, 기술 패권 싸움보다 경기 부양이 우선돼야 하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중국의 AI 모델이 세계 각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될 경우 개인정보 유출, 디지털 분야의 정부 통제 강화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딥시크의 경우 사용자가 계정을 만들 때 입력하는 정보와 서비스 사용 과정에 축적되는 데이터를 중국 내 서버에 저장하는데, 중국 정부가 이들 데이터에 접근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탈리아는 이 같은 개인 정보 문제를 들어 딥시크의 다운로드를 차단했다고 안사(ANSA) 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스푸트니크 순간

1957년 당시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미국에 충격을 안긴 때를 가리킨다. 첨단 기술에서 뒤처졌다고 여겨지던 국가·기업 등이 예상치 못하게 기술력을 끌어올려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을 통칭한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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