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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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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6세기 말 17세기 초 영국 사회는 종교 갈등이 심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념 갈등이랄까. 가톨릭과 성공회와 여러 종파가 생각이 다르다고 갈등을 빚었다. 성공회 쪽은 가톨릭 쪽이 에스파냐 같은 외국 세력을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킬까 걱정했다. 반면 가톨릭 쪽은 성공회 쪽이 자기네를 박해한다고 불만이었다.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스코틀랜드 임금이던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을 겸했다(스코틀랜드에서 제임스 6세,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 성공회 쪽 정부가 이어졌다.



가이 포크스는 1570년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극단적인 가톨릭 믿음을 가졌다. 1593년에는 유럽 대륙의 가톨릭 나라 에스파냐로 건너가 용병으로 일했다. 에스파냐 임금 펠리페 2세에게 제 나라 잉글랜드를 침공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나. 1604년에 잉글랜드로 돌아와 테러 음모를 꾸민다.



가이 포크스와 동료들은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상원에 모인 임금과 귀족 등 잉글랜드의 지도층 인사를 몰살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의사당 지하에 몰래 화약 수십통을 가져다 쌓았다. 들통나기 딱 좋은 음모였다. 심지어 가톨릭 귀족을 살려주자며 자기네 음모를 설명하는 편지까지 보냈다. 1605년 11월4일 밤, 의사당 지하에서 화약 더미를 지키던 가이 포크스가 붙잡혔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음모를 실토했다.



가이 포크스는 1606년 1월31일 처참한 사형을 당한다. 목을 매달고 내장을 꺼내고 주검의 팔다리를 자르는 처형이었다. 이때 잉글랜드 사람들은 기뻐하며 축제를 벌였다. 그 뒤로 해마다 11월5일이면 ‘가이 포크스의 날’ 행사가 열렸다. 가이 포크스 인형을 태우며 불꽃놀이를 했다.



가이 포크스의 처형을 왜들 이렇게 기뻐했을까? 특히 제임스 1세는 영국 역사에서 퍽 인기 없는 임금이었는데. 한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를 겪으며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에 총부리를 겨누는 집단이 벌 받을 때 사회 안팎에서 느끼는 안도감에 대해서 말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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