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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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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아이돌 진출하자… 뮤지컬에도 해외팬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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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문화·풍경까지 바꾸는 K팝 아이돌 팬덤

뮤지컬 ‘웃는 남자’에 주인공 ‘그윈플렌’으로 출연 중인 K팝 아이돌 그룹 ‘NCT 127’의 메인 보컬 도영. 빅토르 위고 원작의 국내 창작 뮤지컬로, 어릴 적 납치돼 늘 웃는 것처럼 보이도록 흉터가 남겨진 얼굴로 유랑 공연을 했던 남자의 이야기다.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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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저녁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비는 눈에 띌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이날 뮤지컬의 주역 ‘그윈플렌’ 역을 맡은 배우는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K팝 아이돌 그룹 ‘NCT127′의 메인 보컬 도영(28). 인종도 국적도 다양한 젊은 여성 팬들은 대부분 18~1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마카오 등 세계 도시 14곳에서 열리는 NCT 127의 네 번째 월드 투어 공연 ‘네오 시티- 더 모멘텀’을 보고 도영의 뮤지컬 공연도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 K팝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들이 늘어나면서, ‘내 가수’가 한국에서 한국어로 하는 뮤지컬 공연을 보려 원정 오는 해외 팬들의 모습이 대극장 주변에서도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뮤지컬로 유입된 K팝 아이돌 팬덤은 극장 문화와 풍경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내 가수’ 보러” 한국 원정 관람

뮤지컬 '웃는 남자' 주역 '그웬플린'으로 K팝 아이돌 그룹 NCT127의 도영이 출연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난 브라질, 호주, 태국 등 해외 팬들. NCT 콘서트와 도영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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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하는 가수라 해도 비용이 부담되진 않으냐 묻자, 호주에서 온 사라와 로fpdls씨는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모두 도영을 위해 쓴다”고 농담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호주에 사는 태국 출신 친구와 함께 태국에서 온 도영 팬들과 합류해 한국을 즐겼다. 이들과 얘기하는 동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왔다는 마르셀라씨가 다가오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난 오직 도영의 공연을 보기 위해 어제 한국에 왔어요. 노래하는 도영의 실제 모습을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어서 무척 기뻐요. 관객이 많고 무대와 거리가 먼 콘서트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는 유지아씨는 “친구 4명과 한국에 온 지 1주일 됐다. 지난주 NCT 콘서트를 봤고 오늘은 도영의 공연을 보러 극장에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같은 간단한 한국어를 꽤 능숙한 발음으로 말했다. “한국어 공연이지만 미리 내용을 공부하고 왔고, 감정선을 따라 가면 완벽히 이해하진 못해도 뮤지컬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도 했다. 도영은 활발히 활동하는 ‘현역’ K팝 아이돌 그룹의 가수여서 관객 동원력도 남다르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도영 공연이 있는 날은 주차난도 더하다. 공연장 인구 밀도가 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K팝 한류 원조라 할 그룹 슈퍼주니어 출신 규현은 뮤지컬 배우로 안착했다. 그의 공연엔 해외에서 온 원정 관객들이 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웃는 남자'에 주인공 '그윈플렌'으로 출연 중인 규현.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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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뮤지컬 ‘웃는 남자’에 출연하는 규현(36)은 초기 K팝 한류를 이끈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출신으로 이제는 대극장 뮤지컬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배우. 특히 아시아 팬덤이 막강해서, 규현이 출연한 뮤지컬 ‘벤허’ 등 이전 공연들에서도 일본과 중국 팬뿐 아니라 히잡을 쓰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동남아 여성 팬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K팝 팬덤 문화도 뮤지컬 극장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무대 안착 역사는 사실 오래됐다. JYJ 출신 김준수와 핑클 출신 옥주현 등은 현재 가장 각광받는 뮤지컬 배우.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 더 익숙한 클릭비 출신 오종혁을 비롯해 인피니트의 성규, 엑소의 수호, 2AM의 조권 등 많은 아이돌이 무대로 오고, 또 안착하고 있다. 오래 훈련받은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고 몸을 잘 쓰는 데다, 뮤지컬에선 연기력이 다소 부족해도 노래로 보완할 수 있어 유리한 측면도 있다. 요즘은 대학로 소극장 공연에도 K팝 아이돌이나 해외에서 인기를 끈 방송 드라마 출신 배우가 출연하면 외국에서 원정 관람 온 관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K팝 아이돌 팬들은 수만명 규모의 대형 콘서트로 단련(?)된 질서정연한 줄서기와 깔끔한 관객 매너 등 K팝 문화도 극장으로 유입시키고 있다. 기존 뮤지컬 팬들의 관람 문화와도 무리 없이 융화된다. K팝 아이돌 팬들은 극장에서도 ‘내 배우’의 ‘뮤덕(뮤지컬 덕후)’으로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캐스팅 보드의 ‘내 배우’ 사진 앞에서 가수를 상징하는 인형을 들고 인증샷을 찍는 등 K팝 팬덤 문화를 뮤지컬 극장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아이돌 출신 배우가 출연하는 또 다른 공연의 한 관계자는 “자기 가수만 챙기던 예전 문화와 달리 요즘 팬들은 다른 배우들을 향해서도 ‘내 배우와 함께 공연해주는 고마운 배우’라 여기고 매너 있게 환호를 보내준다”고 했다.

◇새로운 시장… 현황 파악도 안 돼

뮤지컬 '베르테르' 25주년 기념 공연에 주인공 '베르테르'로 무대에 서고 있는 그룹 '비스트' 메인 보컬 양요섭.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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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25주년 기념 공연을 개막한 뮤지컬 ‘베르테르’의 첫 공연에선 10년 만에 여주인공 ‘롯데’로 돌아온 전미도와 호흡을 맞춘 남자 주인공으로 그룹 비스트 출신 배우 양요섭(35)이 출연했다. 2021~2022년 ‘썸씽 로튼’ 공연 이후 약 3년 만의 뮤지컬 출연. 이날 캐스팅보드나 포토존 앞에선 과연 이전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커튼콜에서 양요섭이 “양요섭 역을 맡은 베르테르입니다”라고 농담으로 인사하자, 비명에 가까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갈수록 뮤지컬 극장에서 해외에서 원정 관람 온 팬들 모습이 많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그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음원 서비스 M사의 티켓 웹사이트, 온라인 티켓 판매처 I사의 영문 글로벌 사이트 등에서 표를 사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로 국적과 구매 방식, 규모 등에 대해 신뢰할 만한 통계는 아직 없다.

‘웃는 남자’를 만든 EMK 뮤지컬컴퍼니 엄홍현 대표는 지난해 초 한 간담회 자리에서 “외국 팬들을 위해 기간을 따로 정해 좌석을 따로 빼 본 적도 있지만 ‘역차별’이라는 국내 팬들의 반발이 있어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한 적이 있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한국 공연에 대한 해외 팬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면 제작사나 배우, 팬들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며 “한국으로 원정 관람 오는 팬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공연 제작사나 기획사들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을 향한 타깃 마케팅 등의 기법이 좀 더 정교해지려면 믿을 만한 통계부터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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