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동의 없이 한국인 합사…야스쿠니엔 지금도 침략전쟁 미화 시각
2024년 8월 15일 끝없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행렬 |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재작년과 작년 8월 15일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취재차 찾았다. 이 무렵 도쿄 날씨는 무덥고 햇살이 따가워 밖에 오래 있다 보면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신사 경내는 불볕더위에도 일본인들로 가득했다. 참배 행렬은 기온이 높아지는 한낮에도 줄어들기는커녕 더 길어지는 듯했다.
8월 15일은 한국에서는 광복절, 일본에서는 종전일이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면서 한국은 일제 지배에서 해방됐고,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했다.
일본 각지에 산재한 신사 중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6천여명의 영령을 추모하는 곳이다.
히로히토 일왕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야스쿠니신사를 8회 참배했지만, 1978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순국 영령'으로 합사된 뒤에는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게 많은 일본인은 8월 15일이 되면 야스쿠니신사를 찾는다.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조상을 추도하기 위해 혹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신사를 방문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정치인들도 집단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보다. 이들은 취재진을 만나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영혼을 존숭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회 요구 기각 뒤 입장 밝히는 한국인 유족 |
그런데 일본인들이 참배하는 대상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도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독립한 뒤에도 한국인 합사 문제를 논의했고, 그 결과 2만여 명이 합사됐다고 한다.
야스쿠니신사는 홈페이지에서 '일본인으로 싸우다 돌아가신 대만, 한반도 출신자'가 '대동아전쟁 종결 시에 이른바 전쟁 범죄인으로서 처형된 분'과 똑같이 합사돼 있다고 소개한다.
이어 합사된 영령의 공통점은 "조국을 지킨다는 공무에서 기인해 돌아가신 분"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야스쿠니신사 전시관을 돌아보면 이곳에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시각이 투영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홈페이지에 버젓이 쓴 '대동아전쟁'이라는 용어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의도를 담은 표현으로 분류된다.
야스쿠니신사에 한국인이 합사돼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아버지나 형제가 유족 동의 없이 합사됐다는 것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법정 싸움을 벌여왔다.
원고들이 요청한 합사 철회 부분 등은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합사와 정보 제공 행위 등으로 원고 권리와 이익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2심 법원 판결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최고재판소 재판관 4명 중 1명은 의미 있는 의견을 냈다.
검사 출신인 미우라 마모루 재판관은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합사하려면 국가의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라며 "평온한 정신생활이 방해받았다는 원고 주장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고들은 이번 소송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사죄문 게재, 유골 양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핵심 청구 내용은 가족 이름을 야스쿠니신사 합사자 명부에서 빼 달라는 것이었다. 배상액을 단돈 1엔으로 정한 이유다.
일본 지원 단체는 판결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전후 80주년의 첫머리를 장식한 최고재판소 판결은 현재도 지속되는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려는 싸움의 시작"이라며 한국인 무단 합사 철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소송이 또다시 제기된다면 미우라 재판관과 같은 의견이 다수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야 원통함을 호소하는 한국인 유족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질 것이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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