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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금)

데뷔 30년 장진 감독, “날선 은유 담긴 조크, 강자에 대한 풍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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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감독, 연출가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경우는 드물지만, 있다. ‘장진 식 코미디’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지난 1995년 연극 ‘서툰 사람들’을 내놓으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장진 감독은 이후 ‘킬러들의 수다’,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은 영화에서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세계관과 유머를 보여줬다. 엄숙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느닷없는 대사 한마디에 허를 찔린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무장해제당했다.

장진 감독이 14일 오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장진은 연극 '꽃의 비밀'을 들고 돌아왔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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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장진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극 ‘꽃의 비밀’을 들고 돌아왔다. 2015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0%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고 중국과 일본에 수출돼 해외 관객에도 웃음을 선사한 작품이다. 그는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이 무대를 통해 실컷 웃다가 가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진 식 코미디’라는 말에 대해선 “항상 민망하다”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날이 선 은유가 담긴 조크(농담)가 풍자가 돼 권력 집단, 힘 있는 자들에게로 향할 수 있다”라며 코미디가 지닌 가치를 전했다. 지난 14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장진 감독을 만났다.

Q : 올해가 데뷔 30년이다.

A : 우선은 자책의 생각이 들었다. 영화계, 공연계 등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간 무엇을 했느냐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창작자 개인으로서도 중요하지만, 공연계가 더 나아지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는 1995년 10월 26일 자 ‘대학로 팔방미인 등장’ 제목의 기사를 통해 장진을 ‘연극계의 샛별같은 신인스타’로 소개했다)

Q : 본인의 이름이 장르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A : ‘장진 식 코미디’라는 건 제게 늘 민망한 말이다. 양식적으로 보면 (이런 류의 코미디는) 늘 존재해 왔다. 단지 내가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언론 등에서 많이 회자하면서 그런 이름표가 붙은 것 같다. 다만 기질적으로 이상한 엄숙주의를 싫어한다. 그리고 은유를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은유를 조금 날 서게 하며 조크를 하면 풍자가 된다. 그것은 권력 집단, 힘 있는 자들로 향할 수 있다. 진지하고 엄숙한 상황에서의 조크를 좋아한다.

Q : 장진 작품에는 여타 코미디와는 다른 웃음이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A : 작품을 해석할 때 과학적·수학적인 인과를 따지고는 하는데, 사실은 아주 단순하고 가볍게 출발한 경우도 있다. 영화 ‘아는 여자’의 출발점은 ‘손 한번 안 잡아 보는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총 안 쏘는 전쟁 영화’ 같은, 어떻게 보면 치기 어린 생각들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장진이 14일 오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은 "어려운 시대 사람들이 무대를 보고 웃으며 쉬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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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꽃의 비밀’이 10주년을 맞았다. 초연, 앙코르 당시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 시대가 바뀌어도 통용될 수 있도록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이 작품이 슬랩스틱 정도의 코미디 장르이다 보니 과거에는 재밌다고 여겨졌지만, 다시 보니 ‘웃음 성공률이 높지 않겠다’라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압축‧생략했다. 나이가 드니 모험을 하고 싶지 않더라(웃음)

Q : 최근의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코미디 작품을 내놓은 부담감은 없었나

A : 너무 큰 사건이 터졌고 충격도 컸다. 이후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대치를 사실은 이해 못 하겠다. 그래도 사람마다 본인만의 염증이 있을 거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체감 경기가 너무 좋지 않고 ‘요즘 살 맛 난다’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잠깐 무대를 보고 실컷 웃으며 쉬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나와 전혀 안 통할 것 같았던 젊은 세대가 한 곳을 보면서 같이 웃는 거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연극 '꽃의 비밀' 기자간담회에서 장진 감독과 배우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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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관객의 반응이 기대되겠다.

A : 궁금하다. 과거 공연 때와 비교해도 세태가 변했는데, 웃음이라는 것은 정말 과격하게 변한다. 예전 성공 사례가 위험할 수 있다. 차라리 과거 사례를 잊고 이번처럼 새로운 배우와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젠가는 다른 연출가에게 작품을 맡기는 것도 생각해 보려 한다.

Q : 새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A : ‘꽃의 비밀’ 초연 때 처음 대본을 보여준 게 장영남 배우였다. 모든 배우가 다 열심히 잘 해주고 있다. 과거에는 작품에서 내 해석을 밀어붙이고는 했는데, 서로 좋은 해석을 다 찾아가자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다. 눈에서 ‘레이저’를 반납하고 목청은 세월에 줬다. ‘즐거운 노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꽃의 비밀’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 빌라페로사를 배경으로, 축구에 빠져 집안일을 소홀히 하던 가부장적 남편들이 하루아침에 사고로 사라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0%를 기록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6년 앙코르 공연을 했고 일본, 중국으로 수출됐다.

극에 등장하는 네명의 주부 중 ‘왕언니’인 소피아 역에는 박선옥‧황정민‧정영주 배우가, ‘술고래’ 자스민 역엔 장영남‧이엘‧조연진 배우가 캐스팅됐다. 예술학교 연기 전공 출신 모니카 역은 이연희‧안소희‧공승연이, 네 주부 중 막내인 지나 역은 김슬기‧박지예가 연기한다. 보험공단 의사 카를로 역은 조재윤‧김대령‧최영준이, 간호사 산드라 역은 정서우‧전윤민이 맡는다.

다음 달 8일부터 5월 11일까지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된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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