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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한 끼라도…” 참사 아픔 나눈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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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에 이어진 도움의 손길

군 의용소방대원들 수색 보조하고

여성농업인 연합-남도사랑 회원 등… 열흘간 밤낮없이 식사 만들어 나눠

애도기간 휴장으로 경제는 ‘한파’… “지역 경제 살릴 지원책 마련을”

한국여성농업인 무안군연합회 회원 등 무안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2층 식당에서 조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농업인 무안군연합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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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오전 11시경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입구. 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벌어진 두 시간 뒤 공항에는 경찰관,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크레인 등 각종 중장비가 들어가는 등 긴박했다. 공항 입구 주변에는 무안군 의용소방대원 5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참사 현장 인근까지 들어가 텐트를 설치하고 필요한 물품을 날랐다. 천덕연 무안군 의용소방대연합회 회장(62)은 “참사 직후 비상 문자를 받은 의용소방대원들이 무안공항으로 달려와 2, 3일 동안 수색 보조 업무를 했다”며 “유가족들을 끝까지 돕고 아픔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 참사에 무안공항 달려온 주민들

한국여성농업인 무안군연합회 회장 신진남 씨(54)는 참사 1시간 뒤 무안공항에 달려와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9일 점심부터 사고를 수습하는 소방관, 경찰관 등을 위해 공항관리동 2층 무료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신 씨와 회원 10명은 연말연시를 대부분 공항 식당에서 보냈다. 새해 떡국을 준비하고 기부로 들어온 생전복을 깨끗이 씻어 전복죽을 만들었다. 무료 식당 운영을 시작한 지 2, 3일 동안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신 씨는 “식사를 하던 사람이 새해라서 떡국을 주는 것이냐고 묻자 그때서야 새해가 시작되는 휴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 씨는 “하루에 평균 4000명분 식사를 조리할 때도 있었다. 허리 펼 시간도 없었다”며 “사고 4일 차부터 전국에서 구호단체 지원이 많이 도착해 조리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식당 운영 10일 동안 하루 평균 4, 5시간만 자며 조리를 했다. 무료 식당은 24시간 운영했는데, 자정부터 새벽까지는 컵라면 300∼400개와 밥, 김치를 준비했다. 이는 하루 뒤면 거의 다 소비됐다. 밤샘 수색작업을 하면서 허기진 소방관, 경찰관, 군인들은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신 씨는 인터넷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구호 물품을 챙겨 갔다’는 악성 글이 퍼진 것에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 씨는 “식당 조리 봉사활동은 유가족 아픔에 견줄 것이 아니다”며 “여건이 허락되면 유가족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도사랑 무안지부 회원 박인규 씨(65)는 사고 수습 현장에서 급식 봉사활동을 했다. 급식 공간은 사고 항공기 기체 수색 장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설치됐다. 쉬지 않고 수색해야 하는 소방관과 경찰관, 군인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 씨는 수색 작업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를 건네며 힘을 보탰다. 박 씨는 “지친 소방관, 경찰관, 군인들이 식사를 하고 다시 힘을 내는 모습을 보며 작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양파 주산지인 무안의 면적은 449km²이며 인구 9만2000여 명이다. 전남 자원봉사센터는 13일 “무안공항과 무안 스포츠파크 분향소에서 봉사를 한 전국에서 온 등록 자원봉사자 6400여 명 중 30%가량은 무안 주민들”이라고 밝혔다.

● 지역 경제도 침체… “지원책 마련 필요”

무안군 자원봉사자들은 사고 이후 침체된 지역 경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자원봉사자 박모 씨(61)는 “참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우리 지역 식당이 ‘하루에 밥 한 그릇도 팔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54홀 규모의 무안컨트리클럽(CC)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5일 동안 이번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휴장했다. 무안CC 직원 80명은 휴장 기간 번갈아 가며 무안공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무안CC 관계자는 “20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를 제외하고 휴장을 한 적이 없다. 추모를 위해 휴장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무안 지역에 추모 분위기가 퍼지면서 상가들은 저녁 시간이 되면 대부분 불을 껐다. 공항 주변 무안읍, 망운·현경·운남면 일대 상가 500여 곳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한충석 무안군 소상공인회장(67)은 20년 동안 식당을 했지만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 회장 식당은 평소 주말에 손님 15팀 정도를 받았지만 현재는 2, 3팀이 전부였다. 한 회장은 “무안전통시장은 평소 사람들로 붐볐지만 현재는 썰렁하다”며 “계엄에 참사까지 겹쳐 사람들이 외식, 모임 등을 자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지역 여행사 예약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여행상품이 사라졌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영암·무안·신안군)은 무안공항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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