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첩 명령 위법성 인정… 박 대령 “네 억울함 없게 하겠다”
‘고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뒤 상관의 수사기록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며 항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025년 1월9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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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 자리에서 일어서주시기 바랍니다.”
정복 차림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피고인석에서 일어났다. 이후 재판부가 주문(판결의 결론 부분)을 낭독했다.
“피고인은 무죄.”
“와!”
방청객 230여 명이 모인 법정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 방청객이 손에 들고 있던 붉은색 장미 한 송이를 피고인석 방향으로 던졌다. 붉은색은 해병대를 상징하는 색이다.
2025년 1월9일 오전 10시2분께 재판 시작 뒤 약 30분 동안 피고인석에 앉아 정면만을 응시하며 재판부의 판결 이유를 듣던 박정훈 대령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방청석 쪽을 바라봤다. 살짝 붉어진 눈시울로 방청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는 듯했다.
오전 10시35분께 재판이 끝났다. ‘박정훈! 박정훈! 박정훈’ 방청객들은 법정에서 박정훈 대령 이름을 계속 부르며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
아들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박정훈 대령의 어머니 김봉순씨가 방청석 맨 앞줄로 나왔다. 어머니가 한 손으로 아들 뺨을 어루만졌다.
“내 아들 고생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얼마나 고생 많았어….”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박정훈 대령은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방청객들이 두 사람을 향해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박정훈 대령은 그의 무죄 선고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방청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고, 기념사진 촬영에도 응했다.
‘VIP 격노’ 이후… 명령 여부 자체도 논란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이 1월9일 박정훈 대령이 항명,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사건 선고공판을 열고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정훈 대령이 기소된 지 약 1년3개월, 그리고 그가 수사단장직에서 해임된 지 약 1년5개월 만에 선고된 1심 판결이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 보통검찰부는 2023년 10월6일 박정훈 대령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국외(우즈베키스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지 말라는 당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의 명령을 박정훈 대령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박정훈 대령이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할 때 이종섭 장관이 ‘사단장(임성근 당시 해병대 제1사단장)도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해 국방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군 검찰 주장(공소사실)이다. 군 검찰은 2024년 11월21일 결심공판(선고공판 전 마지막 공판)에서 박정훈 대령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이 2022년 7월1일 시행되면서, 군인이 범한 성폭력 범죄와 군인이 군인 신분 취득 전에 저지른 범죄, 그리고 군인 사망을 초래한 범죄(일명 ‘3대 이관 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한다. 그래서 3대 이관 범죄 수사와 기소도 군 수사기관이 아니라 경찰·검찰 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전현직 장성급 장교 수사 가능)가 담당한다.
누군가의 범죄 행위가 군인 사망 원인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기초 조사가 필요하다. 그 일을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박정훈 대령이 했다. 박정훈 대령은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소장) 등 8명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2023년 7월18일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구명조끼 착용, 구명줄 구비와 같은 안전대책을 강구하지 않아 채수근 상병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채수근 상병은 2023년 7월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했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기초적인 수사를 군사경찰에서 하고, 그 사망사건에 범죄가 개입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서 처리한다. 채(수근) 상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고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업무상 과실이 개입돼 있다. 즉 안전 장구 하나 없이, 구명조끼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속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도록 지시한 것에 과실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과실이 업무상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인지했기 때문에 법에 따라 (관련자들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했다.” 박정훈 대령의 말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앞줄 왼쪽)이 2025년 1월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어머니 김봉순씨와 기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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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종섭 장관과 김계환 사령관이 예정된 일자에 수사기록 이첩을 못하도록 했고, 군 검찰이 경찰로 이관된 기록을 도로 가져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이첩 보류와 중단 명령 배후에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는 대통령 윤석열의 격노가 있었다는 것이 박정훈 대령의 주장이다. 일명 ‘브이아이피(VIP) 격노설’, 다르게 말하면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이다.
군형법 제44조(항명)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군인을 처벌하도록 한 조항이다. 항명죄만 놓고 보면 이 사건 쟁점은 다음과 같다.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수사기록을 경찰에 넘기지 말라는 명령을 한 사실이 있는지, 과연 그 명령은 명령으로서의 요건을 갖췄는지, 만일 김계환 사령관의 이첩 보류와 중단 명령이 있었다고 해도 그 명령이 과연 ‘상관의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있는지다.
군 검찰은 김계환 사령관의 기록 이첩 보류 명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2023년 7월30일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이종섭 장관은 다음날인 7월31일 김계환 사령관에게 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이후 김계환 사령관이 8월1일까지 박정훈 대령에게 세 차례 이첩 보류를 명령했고, 기록 이첩 당일인 8월2일에도 박정훈 대령에게 수사기록 인계를 멈추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반면 박정훈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장관님이 귀국할 때까지 (수사기록)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7월31일부터 8월1일까지는 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따를지 말지를 고민하고 참모들과 회의한 시간이었다는 주장이다.
“(군) 검찰에서는 7월31일부터 8월1일까지 사령관의 세 차례 이첩 보류 명령이 있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군대에서 상관이 같은 명령을 2박 3일에 걸쳐서 세 차례 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만약 제가 명령을 받았는데 수명하지 않았다면, 군대에서는 당연히 저를 직무에서 (바로) 배제하고 해병대 사령관이 (수사단장 아래) 중앙수사대장에게 국방부 지시를 수명하도록 했어야 맞는 것입니다.” 박정훈 대령이 수사단장직에서 해임된 때는 수사기록이 경찰로 이관된 2023년 8월2일이다.
명령 자체 없었다고 판단한 재판부
재판부는 먼저 김계환 사령관의 이첩 보류 명령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재판에서 ‘사령관이 피고인(박정훈 대령)을 딱 찍어서 기록 이첩 보류를 명령한 사실이 있는지’를 묻는 말에 “수사단장(박정훈 대령)을 향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고, 이호종 해병대 참모장도 “해병대 사령관이 (회의 때) 특정 인원을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은 없었다”고 진술한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해병대 사령관이 기록 이첩 보류 명령을 분명하게 했다는 진술과 배치되는 여러 가지 객관적인 사정이 존재한다”며, 그중 하나로 김계환 사령관이 2023년 8월1일 당시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언급했다. 당시 김계환 사령관은 박진희 보좌관에게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 보인다’ ‘오후에 심층 토의하고 문자 드리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재판부는 “수차례 기록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던 해병대 사령관이, 8월2일 오전 10시께 ‘(기록) 이첩 중’이라는 피고인의 보고를 받고서도 그 즉시 피고인을 상대로 이첩 중단 명령을 하지 않고 약 50분이 지나서야 피고인에게 전화해서 기록 이첩 중단을 명령한 점은, 오히려 해병대 사령관 진술보다는 피고인 진술이 (사실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병대 사령관이 국방부 장관 지시를 따를 것인지에 관하여 회의 내지 토의한 것을 넘어, 피고인에게 구체적, 개별적으로 기록 이첩 보류 명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첩 보류 명령 자체가 없었다는 판단이다.
명령 있었더라도 정당하지 않아
대법원은 군형법 제44조에서 말하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2012도1602 판결 등) ‘상관이 특정인 또는 특정할 수 있는 다수인에 대하여 개별적·구체적으로 내리는 명령으로서 군사상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군사상의 의무에는 반드시 작전행위라는 군의 고유한 임무뿐 아니라 군의 사기, 군기, 군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직접적으로 연관된 임무도 포함된다.’
군 검찰은 김계환 사령관이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군사경찰 지휘·감독권이 있기 때문에 기록 이첩 보류와 중단 명령은 군의 사기, 군기, 군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직접적으로 연관된 임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정훈 대령은 2023년 7월31일 김계환 사령관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당시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전달한 국방부 장관 지시는 ‘이첩을 보류하고 수사기록에서 죄명과 혐의자, 혐의 내용 등을 빼라는 것’이었다며, 이는 위법한 명령이지 법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우선 김계환 사령관에게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을 할 권한이 없다고 봤다. “군사경찰은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는 범죄를 인지한 경우 관련 기관에 지체 없이 이첩해야 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 (…) 군 사법경찰관에 대한 해병대 사령관의 직무 관장 및 지휘 감독권 범위는, 수사단이 (…) 오히려 지체 없이 기록을 이첩할 수 있도록 지휘·감독해야 할 법령상 권한과 의무가 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기록 이첩 중단을 명령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해병대 사령관의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은 특별한 이유가 없고, 국방부 장관 지시를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국방부 장관의 지시 목적은 피고인이 7월30일 보고한 ‘해병대 1사단 고 상병 채수근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서’의 결과 내용과 다른 내용으로 기록이 이첩될 수 있도록 수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려진 것으로 보이는바, 해병대 사령관이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 국방부 장관의 지시와 의도, 그 방법 등에 비추어볼 때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상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정훈 대령 말이 허위사실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임성근 사단장과 같은) 장성급 장교의 처벌 및 이에 따른 후속 인사 문제와 관련한 보고서 내용 및 성격을 고려할 때 장성급 장교의 처벌 여부가 거론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장성급 장교의 처벌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국방부 장관 이종섭의 진술은 이치에 맞지 않고 경험칙에도 부합하지 않아 이를 쉽게 믿기 어려워 보인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앞줄 왼쪽 셋째)이 2025년 1월9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시민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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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법치 살리는 길 가겠다”
재판 종료 뒤 법원 건물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정훈 대령은 장갑을 낀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돌이켜보면 1년 반을 지금 지난 세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저에게는 있었는데, 그것을 버티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 오롯이 이 자리에 계신 국민 여러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라는 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기도 하고, 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수근(고 채수근 상병)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이고, 법치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저의 긴 여정에 관심과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진 강추위 속에서도 마이크를 잡은 박정훈 대령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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