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10 (금)

[빈 집 쇼크]④ 日 0엔짜리 빈 집, 호텔·관광지로 변신... 해결 ‘실마리’ 찾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지난달 27일 오사카시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 호텔의 객실 내부 모습. 이 객실은 오랫동안 빈 집으로 있던 목조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세카이 호텔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기존 목조주택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디자인과 자재를 적용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유명 셰프가 아키야(空き家·빈 집)를 성공적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송이 방영되고 빈 집을 호텔이나 식당으로 잘 활용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일본에서도 빈 집을 바라보는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지난달 27일 일본 오사카시에서 만난 한 30대 교포는 최근 빈 집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변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빈 집 문제는 여전히 일본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자리잡고 있지만 빈 집의 활용 가능성을 눈여겨보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10년 전부터 특별법을 통해 빈 집의 철거·개조를 지원하는 등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여기에 민간에서도 빈 집을 호텔·식당 등으로 변신시키는 성공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도 빈 집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日 빈 집에 정책 역량 집중…빈집세부터 직접 재생 프로젝트까지

일본은 2015년 빈 집 특별조치법을 시행하고 본격적으로 빈 집이 초래하는 안전 문제와 지역 쇠퇴를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법을 통해 빈집을 활용 또는 철거해야 할 대상을 선별해 지원했다. 철거가 필요한 경우에는 철거 비용을, 활용이 가능한 빈 집일 경우 다른 용도의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 비용을 지원했다.

빈 집을 재활용하거나 리노베이션 하는 경우 세제를 감면한다. 지난 2023년부터는 ‘빈 집세’도 걷기 시작했다. 지붕이나 창문 등이 파손되고 잡초가 무성하게 방치하는 등 빈 집 관리에 소홀한 소유주는 세제 혜택을 지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빈 집 문제가 단순히 낡은 집을 방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 지역 경제 쇠퇴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만큼 빈 집 밀집 지역에 인구를 유입하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지방으로 이주해 빈 집을 활용할 경우에 이주 장려금을 지원한다.

정부 차원에서 빈 집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게 돕도록 공신력 있는 거래 플랫폼도 만들었다. 각 지자체는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빈 집 은행)를 통해 빈 집 매물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제공한다. 중앙화된 빈 집 정보를 바탕으로 지자체가 빈 집 소유자와 저렴한 가격으로 빈 집을 구매 또는 임대하려는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다.

조선비즈

일본 나오시마 섬에서 진행 중인 이에(家) 프로젝트의 모습. 이 프로젝트는 빈 집을 예술작품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지자체는 빈 집 활용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가 직접 빈 집을 리모델링해 공유 주택, 카페, 워크숍 공간이나 관광 숙소로 활용하거나 재생 프로젝트를 할 경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같은 정책적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일본 카가와현 카가와군에 위치한 나오시마 섬은 빈 집을 활용해 관광지로 변신시킨 대표적인 지역이다. 현지 출판기업 베네세는 나오시마 지역에서 ‘이에(家) 프로젝트’를 통해 빈 집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빈 집이 늘어 쇠퇴하던 나오시마 지역을 매년 70만명 이상이 찾는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로 발전시켰다.

◇시장 속 빈 집 호텔로 변신… 지역 재생에 소유자 기증도 이어져

이 같은 정책적 노력에 더해 민간에서도 빈 집을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빈 집을 철거·개조하려는 수요에 따른 파생 사업은 물론 빈 집을 호텔이나 식당으로 개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가 있다.

조선비즈

지난달 27일 오사카시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 호텔 프론트 전경. /사진=김유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사카시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 호텔’은 빈 집을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현지 건설회사인 쿠지라 건설은 호텔 사업을 진출할 당시 사회공헌 차원에서 빈 집을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오래된 시장에서 장기간 방치되던 목조주택을 장기 임대해 여행객을 위한 숙소로 변신시켰다. 세카이 호텔은 작년 말 기준 총 22개 객실이 있으며 최대 88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만난 마리 키타가와 세카이 호텔 프로젝트매니저는 “후세 지역은 원래 큰 전철역의 종점이어서 굉장히 큰 번화가였지만, 이후 전철이 난바까지 종점을 연장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 버렸다”며 “호텔이 위치한 시장 역시 700개 점포 중 350개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쇠퇴한 구도심이 된 이 지역에 미래 세대를 위해 지역 전체를 리노베이션 하자는 차원에서 호텔을 짓게 됐다”며 “빈 집을 호텔로 개조하기 위한 비용은 한 채당 인건비, 디자인 비용 등에 약 2400만엔(약 2억2110만원)가량”이라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지난달 27일 오사카시 후세 지역에 있는 세카이 호텔의 객실의 모습. 이 호텔은 시장 내 빈 집을 활용해 객실을 만들어서 객실이 시장 곳곳에 퍼져 있다. /김유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카이 호텔은 시장 곳곳에 있던 빈 집을 개조한 터라 일반적인 호텔과 다르게 방이 각기 떨어져 있다. 시장 한 켠에 있는 호텔 프론트에서 숙소 열쇠와 지도를 받아 숙소를 찾아 가야 한다. 또 호텔 내부 식당도 따로 두지 않고 대신 시장 점포와 협약을 맺어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세카이 호텔의 노력은 인구가 줄어 활기가 떨어진 시장을 다시 붐비게 만들었다.

키타가와 매니저는 “호텔이 있는 시장은 원래 지역 주민들만 이용하는 상점가였는데, 외부에서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가 생기고 있다”며 “호텔의 2023년 기준 누적 숙박객이 6357명인데, 이들이 시장 점포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구입한다고 하면 시장 점포에 추가적인 매출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카이 호텔 근처에서 ‘나니와 고로케’라는 점포를 운영하는 히라노 히데오(67)씨는 “세카이호텔이 들어오고 나서 시장에 보이지 않던 캐리어를 끈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많아졌다”며 “매출도 물론 많이 늘었다”고 했다.



이 같은 세카이 호텔의 취지에 일부 빈 집 주인들은 무상으로 집을 제공하기도 했다. 키타가와 매니저는 “빈 집을 리모델링하고 소유자에게 임대 비용을 지불한 뒤 일 정 기간 뒤에는 소유자가 빈 집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라며 “일부 소유자들은 빈 집 소유자들이 지역 재생이라는 취지에 동참하고자 빈 집을 기증했다”고 말했다.

세카이 호텔의 성공 모델은 다른 지역의 빈 집 활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키타가와 매니저는 “토야마현 타카오카시에서 새로운 빈 집 활용 호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 사업은 직접하는 것은 아니고 프랜차이즈 모델로 진행하는 것으로, 세카이 호텔을 개발하면서 취득한 빈 집 개조 노하우, 근처 점포 협력, 마케팅 등의 부분을 현지 회사에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빈 집은 투자 매물로…외국인 관심도 늘어

빈 집에 대한 활용도가 높아지다 보니 빈 집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무상이나 저렴한 가격에 빈 집을 살 수 있으니 리모델링 비용만 들이면 어엿한 임대 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생활비를 목적으로 상대적으로 임차 수요가 있는 역세권에 위치한 빈 집을 사들여 임대를 하려는 이들이 많다.

조선비즈

지난달 26일 일본 오사카 시내의 한 부동산 앞에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오쿠마 시게유키 전국고가재생추진협의회 이사장은 지난달 26일 “코로나 시기 재택근무가 정착되며 단독주택 임대수요가 증가해 부동산 매물 사이트의 단독주택 매물 게재수가 8개월 만에 20% 증가했다”며 “이외에도 육아 환경을 고려하는 등 단독주택 임대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한정적이어서 빈 집은 잠재력이 있는 성장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토지가격은 도심을 벗어나면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월세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떨어진다”며 “역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 토지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이익을 기대할만한 빈 집이 타겟”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들도 일본 내 빈 집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외국인이 빈 집을 구매하는 데 법적 제한이 없다. 일부 지자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빈 집 정보를 제공하고 구매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다.

조선비즈

아키야뱅크스에 올라온 일본 빈 집 매물. /아키야뱅크스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빈 집 정보 제공 플랫폼 ‘아키야뱅크스’를 창업한 루벤 글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일본 빈 집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크다”며 “지난해 아키야뱅크스의 트래픽을 분석한 결과 일본이 20%의 비중을 차지하며 가장 많았지만, 미국(10%)과 태국(9%), 호주(5%) 등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글레이저 CEO는 “홋카이도, 규슈 등을 포함한 일본의 지자체는 외국인에게 부동산을 판매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며 “빈 집 때문에 주변 지역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고자 빈 집에 대한 정보와 리노베이션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사카(일본)=김유진 기자(bridg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