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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진료를 악용해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실손의료보험을 빼먹는 일부 의료계의 행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정부가 팔을 걷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비급여 관리·실손보험 개혁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연간 22조원에 달하는 '비급여 진료'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정부 개혁안 초안을 공개했다.
개혁안의 핵심은 세 가지다. △비급여 진료 가격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해 '관리급여'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실손보험금을 노리고 과도하게 처방한 비급여 의료 행위에는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해 주지 않는 것이다. 또 △신의료기술 중 비급여 지출이 많은 진료에는 안전성이나 효율성을 따져본 뒤, 정부 차원에서 재평가해 목록에서 제외하는 등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가장 큰 변화는 일부 비급여 진료 가격과 기준을 정부가 정한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도수치료의 경우 지난해 산재보험 수가는 3만6080원에 불과하지만, 건보 비급여 진료비 평균 금액은 10만원, 최고 금액은 28만원이나 됐다. 횟수 제한도 없다 보니 일부 환자가 많게는 1년에 수백 회씩 도수치료를 받고 실손보험금을 받아 갔다. 서남규 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중증이 아닌 분들의 비급여 진료 이용이 늘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이 정체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비급여 진료의 팽창은 한국만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해외의 경우 의료 필요성이 있더라도 재정에 따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한국은 다양한 이유로 치료 항목에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진료비와 진료량, 가격 편차가 크고 증가율이 유독 높은 10개 내외의 비급여 항목을 추려 '관리급여'로 지정하고 진료 기준과 가격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관리급여 항목에는 90~95%의 본인부담률을 적용해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막기로 했다.
관리급여로 전환될 비급여 항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비급여 진료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도수치료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급여 적용 후 도수치료 가격이 10만원이라면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본인부담금 1만~3만원만 내면 되지만, 앞으로는 10만원 중 8만1000~9만250원을 부담해야 한다. 실손보험이 없는 환자는 지금은 전액을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9만∼9만5000원으로 오히려 부담이 줄어든다.
미용이나 성형 목적의 비급여 진료 행위를 하면서 실손보험을 청구하기 위해 급여 진료를 덧붙이는 행위도 금지된다. 정부는 병행진료가 제한되는 비급여 항목을 고시해 이와 함께 이뤄지는 일체의 급여 진료 행위(진찰료, 약제 등)에 대해 비급여를 적용하되 병행진료의 필요성이 높은 경우라면 급여 진료를 인정하기로 했다.
아울러 비급여 재평가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사용 목적·대상·방법 등 사용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기로 했다. 재평가 후 안전성과 유효성이 부족한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을 거쳐 과감하게 퇴출시킬 방침이다. 서 실장은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한 기술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재평가할 근거가 없었고, 재평가 후 퇴출할 수 있는 근거도 명확하지 않았다"며 "의료기술이 안전하고 유효하지 않다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만큼 그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급여 정보도 투명하게 바꾼다. 지금은 항목별 가격 위주로만 비급여 정보가 공개돼 '깜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총진료비, 종별·지역별 세부 진료비,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 결과, 대체 치료법 등을 공개하고 여러 기관에 산재된 비급여 정보를 한곳에 모아 살펴볼 수 있도록 '비급여 통합 포털(가칭)'도 이달 중 구축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다만 "비급여가 실손보험과 엮이면서 문제가 크긴 하지만 실손보험 입장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평가해야 한다"며 "정부 규제보다는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잉 진료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비급여 진료 감독 강화 방안에 대해 의료계는 강력 반발했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9일 "개원의가 아닌 입장에서 봐도 개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정책"이라며 "의사가 비급여 진료를 하고 환자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에서도 인정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저수가로 귀결되는 급여뿐 아니라 비급여까지 정부 통제하에 넣겠다는 것"이라며 "급여수가의 원가조차 보전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비급여 혼합진료에 제한을 둔다면 의사들의 선택지는 100% 비급여 진료만 가능한 피부·비만·미용·성형으로 쏠릴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비급여
국민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돼 환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진료.
[김지희 기자 /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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