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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두 얼굴’의 경찰…전자발찌 보고도 풀어준 뒤 “성범죄 의심자 체포 적극 검토”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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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차고 여성 집 침입 시도…풀어준 경찰, ‘우왕좌왕’ 뒷북 행정

피해 여성, 어린 자녀들과 밤늦게 피신…‘베란다 침입’ 재발방지 하달

경기남부경찰청, 산하 지구대·파출소에 전파…교육자료 제작도 추진

지난달 29일 밤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단지. 베란다를 통해 여성이 사는 집을 몰래 훔쳐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40대 성범죄 전력자 A씨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혐의를 자백한 이 남성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한 뒤 풀어줬고, 소식을 접한 피해 여성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밤늦게 집을 나와 피신해야 했다. 경찰은 A씨를 불구속 상태로 조사하다가 사건 발생 닷새 만인 지난 3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7일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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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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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발찌는 장식용?…경찰의 인지 여부 논란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사건 당시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던 A씨를 이상하게 여겨 그를 따라갔고, 피해자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확인했다.

임의동행 과정을 두고 경찰은 A씨의 전자발찌 착용 여부에 대해 엇갈린 진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착용 여부를 잘 알 수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으나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혐의를 자백한 A씨가 자택에서 반바지를 입고 있다가 긴바지로 갈아입고 나올 때 그의 한쪽 발목에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는 모습을 봤다는 얘기가 돌았다.

과거 성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까지 착용 중이던 A씨에 대한 긴급체포는 불가능했던 것일까. 경찰은 △범죄의 중대성 △체포의 필요성 △체포의 긴급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긴급체포에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신중을 기하며 범죄 혐의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무리한 법 집행을 우려하는 사이 추가 범죄 가능성은 커지고, 시민 안전은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법적 책임과 비난을 두려워하는 21세기 경찰 행정의 현주소이다.

경기남부경찰청 범죄예방대응과는 이 사건과 관련해 관내 지구대·파출소에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공문을 하달했다고 9일 밝혔다. 전형적 ‘뒷북 행정’인 공문에는 ‘평택 아파트 베란다 침입 사건’과 같은 성범죄 의심 사건을 다룰 때 용의자에 대한 범죄 전력 및 전자발찌 착용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재범이나 보복 가능성이 있으면 체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현장 출동 경찰관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면 해당 경찰서 여성청소년과나 형사과 등에 상의할 것도 주문했다. 아울러 용의자를 임의동행 방식으로 조사해야 할 경우 귀가 조처 전 사건 피해자에게 먼저 통지해 사전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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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대·파출소 매뉴얼 없나…“형사과에 문의하라”

이 공문에는 역설적으로 경찰이 초동 대응에 실패한 사실을 보여주는 정황이 여럿 담겨있다.

우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성범죄 혐의자를 풀어주면서 사건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경찰은 A씨가 주거지에 머물러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범행 당시 사용한 운동화를 제출하며 임의동행에 협조한 점 등을 긴급체포하지 않은 이유로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경기남부청은 공문에서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성범죄 의심 사건을 다룰 때 용의자에 대한 범죄 전력 및 전자발찌 착용 여부 등을 확인하라고 지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사건 당시 경찰이 A씨에 대한 범죄 전력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면 해당 경찰서 여성청소년과나 형사과 등에 상의하라는 대목은 아직도 지구대·파출소 경찰들의 현장활동을 상세하게 규정한 매뉴얼이 없을 것이란 의구심에 불을 댕긴다. 이는 법령과 규정, 매뉴얼에 따라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이 지역이나 현장,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민생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을 다루는 일선 지구대·파출소 경찰에 대한 정기적인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세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경기남부청은 이번 사건을 비롯해 지난 한 해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의 초동 대응이 미흡했던 사례를 모아 교육자료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해 교육자료를 제작할 것”이라며 “향후 유사 사건이 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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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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