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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시시비비] 당신은 얼마짜리 데이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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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는 걸, 자동차 보험료를 갱신하라는 알림으로도 느낀다. 며칠 전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 보험을 구성했다. 안전운전 점수 할인, 블랙박스 설치 차량 할인, 이메일 고지서 할인 등 각종 할인 혜택을 챙겼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용을 쓰던 중, 새로운 할인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걸으면 할인해드려요, 걸음 수 할인 특약!".

보자마자 ‘자동차 보험사에서 왜 걸음 수 할인을 해주지?’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아, 내 개인정보, 데이터의 가격이구나.’

보험사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안전운전 성향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운전자의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 자주 걷는 사람, 자주 걸으려는 사람은 ‘건강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사람이다. 당연히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교통사고 가능성이 낮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이를 아는 보험사는 향후 적정 보험료 산정에 경쟁사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또한 보험사가 받아간 내 걸음 데이터는 향후 건강보험이나 생명보험 상품의 교차판매를 위한 기반이 된다. 이들은 걸음 수와 같은 일상적인 건강 지표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추천할 수 있게 된다.

아시아경제

데이터에 기반한 AI 혁명이 진행됨과 동시에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10여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터넷에서 어떤 상품이 무료라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다. 당신이 바로 상품이다."

디지털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면서 우리의 각종 행위는 기록으로 남게 됐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했는지 등 모든 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서버 어딘가에 저장돼 있다. 그 기록을 ‘데이터’라 부른다.

새해 첫날 미국 라스베이거스 트럼프호텔 앞에서 테슬라 ‘사이버트럭’ 폭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고는 개인정보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테슬라 차량에는 8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주변 지형과 물체 탐지 등 자율주행의 핵심 기반이 된다. 카메라가 저장한 영상은 용의자 정보를 확인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이는 한편으로 테슬라가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그럼에도 범인 행적 파악에 결정적 도움을 줬다는 점, 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가 자율주행 기술 진보에 이바지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개인정보 논란은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데이터는 새로운 원유다.’ 꽤 오래전부터 회자된 말이고, 이제는 데이터를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이 됐다. 모두가 데이터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은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발전하고, 이는 다시 더 나은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명분이다. 이 지배적 명분하에서 개개인의 모든 행위는 AI 발전을 위한 연료로 취급된다.

AI 경쟁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단위로 이뤄지고 있다. AI 혁명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가 원유’라는 이유로, 개인의 정보와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뽑아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데이터는 추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동적 기록 따위가 아니다. 구체적인 사적 기록이자, 재산이다. 기술 진보에 활용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저가에 마구 수집되고 있는 데이터 추출 관행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김동표 전략기획팀장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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