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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이슈 미술의 세계

[갤러리 산책]흙과 불이 빚은 달을 담다 '조선도공의 둥근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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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용순 작가의 달항아리 전시

흙과 불, 물레와 합일된 작가의 집중

23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

"조선 도공의 정신은 흙과 불 속에 살아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용순, 백자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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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빚을 때마다 조선 도공들의 숨결을 느낀다는 이용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흙과 불로 빚어낸 그의 달항아리는 조선 도공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겸비했다. 그가 개인전 ‘조선도공의 둥근 마음’을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오는 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통 조선백자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최근 작품들을 선보인다. 66세의 이용순 작가는 정규 도예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50년 도공의 길을 걸으며 도자기 수리와 복원 작업을 통해 도예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철저하게 조선 도공들의 전통을 따른다. 전국을 돌며 백자 파편을 연구하고, 직접 산에서 백설기 같은 백토를 채취하며, 유약도 손수 만들어 사용한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완벽한 대칭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러운 둥그스름을 통해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데, 이는 인간의 불완전함 속 빛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입은 크고 몸체에 비해 밑굽이 좁은데도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몸통과 굽 사이의 직선으로 인식되는 선이 수평선 위에 둥실 떠 있는 달을 연상시킨다. 색조는 약간 푸른 기가 도는 설백에서 불투명한 유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공간과 빛에 따라 달항아리는 마치 사람 얼굴처럼 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우윳빛이 도는 은은한 유백색 피부는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후덕하게 빛난다.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달항아리’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다채로운 달항아리의 매력은 카메라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오직 눈으로, 마음으로만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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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 작가.


또한, 이용순 달항아리의 입체감과 질감은 마치 우윳빛 피부처럼 부드럽고 은은하다. 차경림 아트디렉터는 “작가의 달항아리는 후덕하고 우아하며 듬직한 서정을 담아 현대미술에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발휘한다”고 언급했다.

생전 박서보 화백은 이용순을 "생존하는 달항아리 작가 중 최고"로 평가하며, "형식이나 테크닉을 넘어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고 극찬했다. 그는 "달항아리는 어떠한 문양도 없이 단순한 형태와 유약, 태토만으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단색화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평했다. 특히 설백의 백자사발이 비워져 있음에도 맑고 푸른 물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에 이끌려 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전시실에 놓인 작가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깊은 심리적 위안을 전한다. 이정아 아트 심리학자는 “달항아리는 비워진 공간을 통해 보는 이의 내면을 채우는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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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순, 백자 달항아리. 높이 47, 폭 44. [사진제공 = 토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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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화절정기인 18세기의 산물로 평가받는 달항아리는, 지금도 여전히 현대미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동시대적 예술품이다. 실제로 벨기에의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악셀 베르보르트, 재일한국인 건축가 이타미준과 같은 저명한 아트 컬렉터들이 이용순의 달항아리를 소장하고 있다.

섬세한 조명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관람객은 이 공간에서 흙과 불이 빚어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비어 있되 오히려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는 달항아리는, 보는 이의 감각과 내면을 채우며 사색과 치유의 순간을 선사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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