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L·하이센스, 삼성·LG 위협
중국 참가 업체 수 미국에 육박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장벽 엄포와 미국 정부의 관람객 비자 발급 거부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CES 2025 현장에는 중국 기업과 관람객이 가득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중국 베이징·상하이에서 열리는 행사를 방불케 했다. 한국 기업과 학계 관계자들은 중국 기업의 최신 제품·서비스를 통해 이들이 더는 추격자가 아니라 동등한 경쟁자임을 체감해야만 했다.
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인 CES 2025가 7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개막했다. 전시장 중심인 센트럴홀에는 삼성전자, LG전자, SK그룹 등을 필두로 전 세계 주요 가전·IT 업체가 참가해 자사의 최신 인공지능(AI) 가전과 기술을 시연했다.
부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삼성전자였으나 중국 양대 가전·TV 업체인 TCL과 하이센스 부스 규모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 부스보다 훨씬 컸다.
TCL과 하이센스가 강조한 것은 100인치 이상 대화면 LED TV였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이 부족한 중국 기업이 LCD 패널 양산에 특화한 강점을 살려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중국=저가'라는 공식을 깨고 삼성전자·LG전자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고 밝힌 뤼마오씨는 TCL 부스에서 기자와 만나 "삼성·LG 제품이 중국 기업 제품보다 기술력에서 앞설 수는 있다"며 "하지만 그 기술이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냐는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저가, 대화면 등 고객이 원하는 부분을 파악해 집중 공략하는 중국 기업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TCL과 하이센스 부스에선 노골적인 삼성전자·LG전자 베끼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TCL 부스는 입구에 대형 스크린 2개로 구성한 로봇을 배치해 가정용 로봇이 이번 전시의 핵심임을 표현했다. '에이미(AiMe)'라고 이름 붙인 가정용 로봇은 지난해 국내 기업이 선보인 가정용 로봇처럼 음성 명령을 통해 집에 있는 다양한 가전을 제어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제품 단독으로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기능을 탑재하는 등 삼성전자·LG전자가 공개한 기능을 반년 정도 기간을 두고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TV, 에어콘 등 가전을 집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과 이동성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2년 전 한국 기업이 선보인 콘셉트다.
하지만 혁신성 있는 신제품도 함께 공개하는 등 단순히 한국 기업 따라하기에 그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예를 들어 TCL과 하이센스는 115인치가 넘는 대형 TV를 부스 전면에 내세우며 100인치 이상 TV 시장에선 삼성·LG보다 우위에 있다고 꾸준히 강조했다. 디스플레이 패널 자회사인 TCL CSOT 영향으로 TV와 모니터를 강조하는 TCL과 달리 하이센스는 전장(자동차 전자장비)과 전기차 배터리를 새 먹거리로 삼고 관련 기술을 전시했다. 일례로 하이센스가 이번에 선보인 전기자동차용 유체 냉각시스템은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열을 액침냉각으로 빠르게 식힘으로써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면서 화재 사고 등을 막는 솔루션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로보락, 에코백스, 나르왈 등 중국 로봇청소기 제조사도 부스를 꾸리고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냈다.
BYD와 함께 중국 양대 자동차 기업인 지리자동차의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부스를 꾸리고 '011 FR' '009 그랜드' '믹스' 등 전기차 3종을 전시했다. 001 FR은 지커의 주력 세단인 011의 고성능 모델이고, 009 그랜드는 5인승으로 설계된 고급 다목적차량(MPV)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 샤오펑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자회사인 샤오펑에어로HT도 전기차와 UAM을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의 '플라잉카 LAC(랜드 에어크래프트 캐리어)'를 공개했다. 2인승 UAM과 이를 수납할 수 있는 전기밴으로 구성된 제품으로 도로가 있는 지역은 전기차로, 도로가 없는 지역은 UAM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성이 특징이다.
다만 두 전기차 회사 제품이 실제로 미국 시장에 출시될지는 미지수다. 지커는 2023년부터 꾸준히 미국 시장 진출을 꾀했지만 실제 제품 출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 전기차의 미국 시장 진출은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샤오펑에어로HT는 부스 전면에 중국어를 큼직하게 배치하는 등 미국 시장 진출보다는 CES 중국인 관람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시연하는 데 집중하는 느낌을 줬다.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에 따르면 CES 2025에 참가하는 중국 기업은 1339곳으로 미국(1509개)에 이어 2위다. 한국 기업은 1031곳으로 3위로 집계됐다. 실제로 모빌리티와 기업 간 거래(B2B) 관련 기업이 위치한 LVCC 노스홀과 부품업체·스타트업이 있는 베니션호텔 컨벤션센터에는 중국 기업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미국 정부는 애초 중국 테크기업 관계자에 대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등 CES에서 중국 비중을 낮추려는 행보를 보였으나 관람객이 폭증함에 따라 한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관람객은 "CES 2025 관람을 위해 비자 발급을 요청하면서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주경제=라스베이거스(미국)=강일용 기자 zer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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