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한남대 경제학과 교수) 신년인터뷰
"대화·협상 창구 사라진 한국…불확실성 더 커져"
"강력한 리더십 부재·진영 논리에 빠져 구조개혁 이뤄내지 못한 한국"
"트럼프 정책 대비가 우선…여야정 협의체 필요"
올해 우리 경제를 둘러싼 근심은 크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 중후반에서 1%대 초중반으로 낮췄고 한국은행과 정부마저도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잠재성장률(2%)보다 낮은 1.9%, 1.8%로 제시했다. 계엄 여파로 최근 외국인들은 대규모 국채 매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IB들은 올해 원·달러 환율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국경제학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한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아시아경제와의 신년인터뷰에서 최근 탄핵 정국과 관련해 "한 마디로 설상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악순환에 빠지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된다"며 "외국 정부도 우리나라와의 대화와 협상 창구가 없어졌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있는 한국경제학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와 진영 논리로 구조개혁을 이뤄내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환점을 만들기 위한 해결책은 노동, 교육, 연금 개혁에 있다"며 "개혁을 위해서는 기득권의 양보나 손해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인 합의 체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럴 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리더십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개혁은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외압에 의해 이루어진 바 있는데 내생적으로 이루어진 개혁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다양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데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만이 아니라 사회적 시각에서의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이 속도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의 진영 논리가 개혁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진영 논리에 빠져 개혁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개혁 자체에 대한 논의도 진영 논리로 가고 있다"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2기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여야가 합심해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여야 간의 갈등이 너무 커져서 (구조개혁을 위한) 중요한 시점을 놓친 것 같다"며 "국민들도 그러한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고 진영 논리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시대의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클 것이기 때문에 여야정 협의체를 만드는 등 여야를 떠나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혁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대부분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도소매업, 음식숙박업에 종사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 당시 정부가 보조금을 푸는 등 재정을 투입한 결과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양극화가 발생했다"며 "민주주의란 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어려울 때 포퓰리즘으로 향하지만, 우리나라나 어느 나라나 공짜 점심은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이 서울 종로구 한국경제학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이자 7대 선진국이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 K-컬처와 K-푸드로 국가 이미지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 강화가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에 많은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로서는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시나리오별로 세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한 마디로 ‘설상가상’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악순환에 빠지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외국 정부도 우리나라의 누구와 대화하고 협상해야 하는지 당황할 것이다. 대화와 협상의 창구가 없어져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 과거 탄핵 정국(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비교하면 지금의 경제적 불확실성은 어느 수준인가.
▲그때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다. 2004년에는 중국 경기의 호황, 2016년에는 반도체 경기 상승으로 대외적인 수출 경기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로 수출 경기에 하방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내수도 매우 취약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의 구체적인 정책 액션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대외환경도 나쁘고 불확실성도 크다. 우리나라 주력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시기다. 우리 경제의 분기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 정치가 경제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는 정치와 별개일 수 없다. 경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무역, 자본거래 측면에서 개방된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대외경제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합의가 있었으면 한다. 트럼프 재집권에 대응하는 방안은 여야가 큰 차이가 없을 거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적어도 담당자들이 소신을 갖고 준비해 협상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동선언을 해야 한다.
- 내년 우리 경제가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탄핵사태 이전에도 일부 기관에서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1%대로 예측한 곳이 있었다. 탄핵에 따른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나라의 장기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이를 반전시킬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새로운 모멘텀은 안정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에서 나온다. 그러나 국내 정치의 불안정으로 대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라 우려가 크다.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환점을 만들기 위한 해결책은 노동, 교육, 연금 개혁에 있다. 개혁을 할 때는 기득권의 양보나 손해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인 합의 체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럴 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리더십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다. 시의적절한 구조조정이 없으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자본투입이 되지 않아 총요소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의 추세라면 잠재성장률은 2030년대에는 0%대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진영 논리에 빠져 개혁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개혁 자체에 대한 논의도 진영 논리도 가고 있다. 유불리를 따져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의료개혁과정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한숨만 쉬었을 것이다. 우리의 개혁은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외압에 의해 이루어진 바 있는데 내생적으로 이루어진 개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다양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데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만이 아니라 사회적 시각에서의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이 속도를 냈으면 한다.
-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하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혁신이 중요하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비중이 압도적이다. 정부가 '어려우니까 도와줄게' 식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아지도록 도와야 한다. 줄일 건 줄여가면서 업계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스케일업(scale-up)하고 고부가가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코로나 당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게 재난지원금을 많이 풀었다. 원리금 상환 또한 연장했기 때문에 연체율도 많이 떨어졌다. 이러한 점이 구조조정을 더디게 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코로나 당시 미국 경제가 많은 정책적 지원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취약 계층들은 코로나 때 많은 지원을 받았음에도 굉장히 힘들어한다. 재정을 투입한 결과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양극화가 발생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당시 코로나 지원금은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직시하면서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어려우면 포퓰리즘으로 향한다. 우리나라나 어느 나라나 공짜 점심은 없다.
- 로봇, 인공지능(AI)의 등장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나.
▲노동 투입 감소의 심각성을 완화시킬 수는 없지만 투자 등의 조정이 이뤄지면 가능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크다. 사업체 수는 99%가 넘고, 고용은 80%가량을 차지한다. 이러한 부문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성장률도 높아지고 양극화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된다. 정부도 '어려우니까 도와준다'가 아닌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유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다.
▲소위 말해 반도체, 바이오산업에서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지난 2년 동안 기업,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노력이 있어야 했다. 과거에는 반도체, 배터리 등에 투자했는데 중국이 빠르게 추격했다. 미·중 간 관세전쟁이 발생하면 시간을 버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미중 간 보복관세는 경제적으로는 양쪽에 모두 안 좋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세 전쟁은 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 이민 정책이 저출생, 고령화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이민 문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할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는데 외국에서 좋은 인력들이 오면 도움이 되겠다. 외국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쓰기만 하면 된다. 교육이란 건 외부성이 있다. 그 우수한 외부성을 사용한다는 차원에서 좋은 거다. 경제적 측면에서 문제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많겠다. 이민의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 이상의 사회, 정치적인 이슈가 있다.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겠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점은 굉장히 클 것이고, 궁극적으로 이민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긴 할 거다. 그러나 사회, 정치적 갈등은 우리가 바꿔야 하고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최근 환율이 1480원대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낮아 자본유출 가능성이 커지면서 환율이 상승했다. 또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의 도피가 달러 가치의 상승(환율 상승)을 발생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국내의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욱 커져 환율이 크게 뛰었다. 국내 정치의 불안이 증폭되고 장기화한다면 환율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혹은 과도하게 환율이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외자산이나 외환보유고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1990년대 말과 같이 천정부지로 환율이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가정은 정치적 불안이 완화되고 안정을 찾아간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 고환율 국면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나.
▲한국은행에서는 물가와 금융의 안정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물가의 안정은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는 듯하다. 향후 한은이 금리를 결정하는 데 있어 환율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미금리차가 1.5%포인트인 상황이고 환율의 변동성(환율상승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된다면 한은이 금리를 내리는 데 부담이 없겠지만, 환율이 천정부지로 뛰고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고 환율이 안정성을 찾는다면 한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국민들에게 하려 했던 것도 잘 이행되지 않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의료개혁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의견을 조율하고 취합해가는 것이 리더십이다. 실행을 위한 준비성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민간 중심의 경제 운영은 한편으로는 좋은 얘기지만 이를 잘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추진해야 한다. 조율하고 합의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 새로운 정부에 필요한 리더십은.
▲여야 간의 갈등이 너무 커져서 (구조개혁을 위한) 중요한 시점을 놓친 것 같다. 국민들도 그러한 갈등 속에서 고통을 겪고 진영 논리에 휩싸였다. 경제성장을 위해 여러 미사여구를 쓸 수 있지만, 방법(how)이 중요하다. 지금의 난국에서 다음 정국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말하기 어렵다. 다만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는 머리를 싸매서 준비해야 한다.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여야정 협의체를 만드는 등 여야를 떠나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탄핵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가장 심각한 이슈는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였다. 이러한 부분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대담 = 정재형 경제금융 부장 jjh@asiae.co.kr
정리 =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