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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정운찬 칼럼]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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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예외 없이 2024년 연말을 불안하고 짜증스럽게 보냈을 것이다. 느닷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소동과 각종 탄핵소추에다 항공기 참사까지…. 오죽하면 설렘과 다짐 속에 맞아오던 새해를 을사년 대신 ‘을씨년’스럽다고까지 했겠는가. 곧 임기를 시작하는 트럼프 대통령 리스크와 북한 김정은의 지속적인 위협, 환율 급등과 소비 위축 등 위기의 한국 상황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계엄·탄핵에 참사로 얼룩진 세모

정치권 혼란에도 한국 위상 여전

리더는 투사·반란자·성자의 면모

우리 각자가 백마 탄 초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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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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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정정당당히 각종 조사에 임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려, 탄핵 재판을 늦추려는 꼼수 아니냐는 언론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탄핵이 소추된 마당에 스스로 각종 조사에 적극 응하고 탄핵재판을 빨리 받는 것이 도리다. 계속되는 야당의 각종 특검 요구와 국무위원급 인사 및 검사들에 대한 탄핵 공세로 야기된 국정 마비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이로써 비상계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 방법이 나쁘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건국 후 우리가 피로써 지켜온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수사기관의 조사에 당당히 임하고 투명하고 적법한 헌법재판소의 재판에 순복하는 것이 자신이 불러온 국격 추락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국민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자중해야 한다. 이 대표는 22대 국회 들어 셀 수도 없이 많은 행정부 고위직과 자신의 수사 검사들에 이어 마침내 한덕수 대통령 직무대행까지 탄핵했다. 많은 국민들은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는 꼼수로 보고 있다. 그가 지지파들의 반쪽 대통령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법률과 규정에 따른 재판 일정에 정정당당히 출석해 재판받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지도자 이전에 한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거부하는 후보를 원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재명은 안됩니다’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겠는가.

정치권 특히 여야의 두 최고위층이 야기한 여러 문제에서 비롯한 혼돈과 혼란에도 한국의 위상은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김주혜 작가의 톨스토이상 수상,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 각 나라 사람이 따라 부르는 로제나 BTS의 노래, 심야에도 혼자 산책할 수 있는 한국의 치안, 외국인들이 맛과 건강한 재료에 ‘엄지 척’을 세우는 한식, 대부분 국가에서 품질을 인정받는 반도체와 자동차, 화장품, 그리고 질서 있고 친절한 국민성은 세계인이 우리에게 보내는 찬사이며, 동시에 우리들의 자부심이다. 12월 계엄사태에 질서 있게 항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무안공항 참사에 보여준 위로와 격려의 공감 능력에 세계인들은 한국을 주시하며, 계엄사태 이후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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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1면에 다룬 지난해 10월 11일 일본 주요 조간신문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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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은 지도층, 특히 정치 리더들이 문제란 얘기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역사 리더십’을 가르치는 역사학자 모식 템킨(Moshik Temkin)은 최근 펴낸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에서 역사 속 리더들의 특징을 분석하며 리더를 ‘투사, 반란자, 성자’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 남은 진정한 리더는 위기에 투사처럼 나서 정면으로 맞섰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는 반란자라는 비난을 들어도 협상할 줄 알았으며, 국가와 국민들을 보듬고 기꺼이 성자처럼 헌신하거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템킨 교수가 말하는 리더의 세 번째 덕목 ‘성자’, 특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란 설명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을 대혼란과 큰 위기에 빠뜨린 여러 사람들이 과연 살아날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끝에 이런 답이 떠올랐다. “그래, 모순이 극대화되고 파국에 다다른 뒤에야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 출발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이 없을 리 없다. 한 가지 방법은 불타는 집에 뛰어들어 남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소방관이 되는 것이다.”

이 나라는 지금 깊은 위기 속에서 정치라는 집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그 불을 끄기 위해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뒤로한 채 불속으로 과감히 들어가 온몸으로 문제를 끌어 안고 희생할 난세영웅이 필요하다.

나는 어느 시대에나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를 맞을 준비를 하자. 그리고 우리 각자가 초인이 돼보자. 푸른 뱀의 해 을사년 2025년은 확실히 어려운 한 해가 되겠지만,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한국전쟁과 IMF 구제금융 위기 등 현대사의 국난 극복 경험을 되살려 내자. 2025년 세모에는 작년 말의 불안과 불확실성, 불신에서 벗어나 세계가 우러러보는 ‘도전과 응전의 롤모델’, ‘최고 품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을 되찾아오도록 우리 모두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자. 바로 지금부터.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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