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의 문화 취향, 복고풍
신전 앞면 본뜬 ‘템플 포르티코’… 서양 명품거리·고급주택 표준돼
하강기서 확산된 팔라디오 건축… 과거 영광 떠올리게 해 각광받아
그리스·로마 신전의 앞모습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16세기에 지은 건물. 사진 출처 빌라 로톤다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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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미술사학자로서 여행지 추천을 요청받을 때면, 비첸차라는 도시를 손꼽곤 한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비첸차는 인구 약 11만 명의 작은 도시로, 잘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는 서양 건축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건축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 양식을 이르는 ‘팔라디아니즘’은 바다 건너 미국에까지 영향을 미쳐 백악관에도 적용됐다. 동아일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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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디오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들도 그의 영향력이 미국 백악관에까지 미쳤다는 사실을 들으면 흥미가 생길 것이다. 백악관 건물 한가운데에는 4개의 기둥이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그리스·로마의 신전 앞면이라는 뜻에서 ‘템플 포르티코’라고 부르는데, 이 모티브를 가져와 주택이나 관공서에 적극 사용한 건축가가 팔라디오이다.
팔라디오는 비첸차에서 태어나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활동했다. 건축가로 명성을 얻은 후에는 비첸차가 속해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고용돼 당시 상류층의 저택과 빌라, 교회 등을 지었다.
그의 영향력은 새로운 미감을 찾던 영국을 거쳐 신대륙 미국으로까지 옮겨간다. 팔라디오 사후 그의 건축 양식을 따라 하는 건축 양식을 ‘팔라디아니즘(Palladianism)’이라고 부르는데, 백악관처럼 템플 포르티코가 들어간 정갈한 하얀색 건축물이 대표적이다. 백악관 스타일의 건축 양식은 곧바로 미국 고급 주택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건축 양식이 바로 팔라디아니즘이다.
요즘 명품거리로 불리는 곳들을 가보면 흰색 벽면에 고전적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런 곳도 크게 보면 팔라디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한국의 고급 백화점이나 웨딩홀, 심지어 대학 건축물에도 템플 포르티코가 많이 사용된다.
이렇게 팔라디오는 2000년 전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을 서양 근대 건축에 고급스럽게 재사용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팔라디오가 남긴 건물 수십 채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비첸차다.
비첸차에 있는 팔라디오의 건축물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다. 서양 건축사 책에 꼭 등장하는 유명한 건물인데 막상 가서 직접 보면 다소 놀라게 된다. 건물 안쪽에 벽돌로 지은 상가들이 즐비한데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면 아치로 깔끔하게 이어진 팔라디오의 멋진 고전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안은 중세식 상점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고 이를 팔라디오의 아치형 건축물이 에워싼 형태다.
이 건물은 원래 15세기 비첸차의 시청이자 상점가로 지어진 것을 팔라디오가 리모델링한 것이다. 길이 82m, 폭 27m, 높이 24m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총 3개 층으로 구성되는데, 1층은 상가, 2층은 시청 사무실, 3층은 대회의실이 자리하고 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관상복합건물인데, 이런 기능의 건축물이 이미 500년 전 비첸차에서 세워진 것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15, 16세기부터 50여 개의 점포가 마치 오늘날의 백화점처럼 한 건물 안에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르네상스의 경제 부흥을 잘 보여주는 경제사적 의미도 지닌 건물이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다.
중세 건축물들은 주변 환경에 맞춰 지어지다 보니 형태가 불규칙하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도 아치의 크기는 일정하지만, 이를 받치고 있는 작은 기둥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중세 건물의 불규칙한 구성을 고전적 균형으로 재해석하고자 팔라디오가 두 기둥 사이의 간격을 조절해 불규칙한 내부와 외벽 사이 균형을 맞춘 것이다.
건물 외벽에는 또 다른 혁신이 숨어 있다. 가까이서 보면 층마다 색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비교적 저렴한 석재로 건물을 지은 뒤 백색 분을 입혀 값비싼 대리석 건물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팔라디오는 제한된 예산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까지 보여줬다.
팔라디오가 활동하던 당시 비첸차를 포함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경제적으로 하향 국면이었다. 이전까지 베네치아가 누려 왔던 지중해의 패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가로막히면서 경제 무대가 점차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해상무역에서 부를 얻지 못하게 되자 공화국 지배층은 토지 소유, 즉 부동산에 점차 눈을 돌렸다. 이 과정에서 건축 붐이 일었고 여기에 적극 답한 건축가가 바로 팔라디오였다.
행복했던 과거를 연상시키는 복고풍은 기본적으로 불황기의 대표적인 취향이다. 불황기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는 당시 귀족들의 정서와 어느 정도 일치했을 것이다. 16세기에 팔라디오가 되살려낸 고전주의 건축도 일종의 복고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불황기에 확산된 팔라디오의 건축이 오늘날에 이르러 서양 엘리트의 중요한 미적 기준이 됐다는 사실은 다시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준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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