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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비상계엄 주도한 정치군인들… 육사 ‘오욕의 역사’ 되풀이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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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사태로 본 軍 현주소

진급욕심에 충성 경쟁 과열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도

항명 커녕 동조… 책임회피만

다시 권력의 부역자로 전락

계엄군 대부분이 육사 출신

하나회부터 이어진 흑역사

“내란 장교 양성 요람” 비난글

생도들도 자괴감… 이탈 가속

“우리군 절대적인 위기 상황

전부 다 바꾸겠다는 각오로

행정형 군대 잔재 걷어내고

전투형 군대로 리빌딩해야”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군이 이러면 안 되지.” “군 수뇌부들 판단이 너무나 안이했다.” “이쯤 되면 육군사관학교는 문을 닫아야 하지 않나.” “전투준비는 뒷전이고 정치군인만 득실대는 군대가 됐다.”

12·3 계엄 사태로 만신창이가 된 군을 바라보는 군 안팎의 시선이 따갑다. 국가와 국민 안전을 수호하는 군의 존재감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 현역은 물론이고 예비역들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는지”,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단순 국회 경고용인가, 아니면 명백한 내란인가”를 묻기도 전에 발끈한다. 목소리는 격앙됐고 표정에선 상실감이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사태를 진단하는 인터뷰 요청에는 손사래를 친다. 한 육군 예비역 장성은 “군이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권력의 부역자가 된 형국 아니냐. 낯짝이 있지, 어떻게 대놓고 말을 할 수 있겠나.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 국민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것은 군인들이 아주 몹쓸 놈들이라는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육사 출신 또 다른 예비역 장성은 “정치군인들이 군을 말아 먹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육사가 있다”고 했다. 헌정사를 유린한 40년 만의 비상계엄을 계기로 군의 당면한 문제점과 변신 가능성을 짚어 봤다.

세계일보

‘호국간성의 요람’으로 불려온 육군사관학교가 12·3 비상계엄으로 ‘정치군인 양성소’란 비판에 직면했다. 사진은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린 지난해 10월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시가행진 중인 육사 생도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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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급’ 위한 충성경쟁에 항명은 뒷전

이번 계엄의 실마리는 미욱한 대통령이 제공했지만,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에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본 군의 책임 또한 엄중하다. 1979년 12·12 쿠데타 때도 불법적인 명령에 항거했던 군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계엄 파동에서는 그 누구도 항명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더는 군인에게서 무장의 기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샐러리맨으로 전락한 탓이다. 대신 진급을 위한 충성경쟁 내지는 줄 대기만 만연한 상황이다. 이러니 젊고 능력 있는 장교들에겐 야전 경험보다는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오가며 상관의 심기를 맞추는 일이 우선이 됐다. 군 내부 권력 역학관계와 정치권과의 연계 등을 눈여겨보며 자연 ‘정치군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게 불문가지다. 이들이 모시던 지휘관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면 이들의 진급은 그야말로 일사천리, 탄탄대로다. 이런 군의 내부 기류를 잘 아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실 경호처장 시절부터 부하들에게 ‘진급’을 앞세워 충성 다짐을 받았을 개연성이 높다. 김 전 장관을 따랐던 육군참모총장,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방첩 사령관, 정보 사령관 등 군 지휘관들 역시 계엄 성공 시 내심 더 높은 자리를 기대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12·3 비상계엄은 이러한 잘못된 충성경쟁의 후과다. 이를 두고 군 관계자는 “진급이 눈앞에 있는데 누군들 흔들리지 않았겠냐”라고 했다.

◆또다시 권력의 부역자로 전락한 군

우리 군형법이나 군 인사 기본법은 12·12 쿠데타를 거치면서 반인권적이며 반법률적인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것은 항명죄가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적용돼 군 내부에서는 관련 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도 군 지휘관들은 이번 계엄이 합법적이라고 판단, 병력을 동원하는 우를 범했다. 잘못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몇몇 지휘관들은 TV와 유튜브에 출연해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좀 봐달라’는 듯 눈물까지 흘리며 볼썽사나운 모습도 연출했다. 병사라면 모를까 정무적 판단까지 하는 군 지휘관들이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명분으로 제시한 국회의 체제 전복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한 상황을 제대로 몰랐다는 얘기는 핑계일 뿐이다. 전직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령에 따른 내 부하들은 잘못이 없다. 그 정도 선에서 얘기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오히려 마지못해 동조한 것처럼 떠드는 바람에 혼란만 키웠다. 결국 그렇게 권력의 부역자로 전락하면서 대한민국 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정치군인’ 양성소 된 육사

군사정권을 옹립했던 하나회 시절부터 이어진 육사의 정치 참여 계보는 면면히 이어져 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도 김(육사 38기) 전 장관을 필두로 대령급에 이르기까지 계엄군 지휘관으로 출동했거나 계엄을 모의한 이들 대부분이 육사 출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육사가 초급장교의 요람인 만큼 육사 출신이 다수 개입된 것은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최측근으로 2018년 불명예 제대한 노상원(육사 41기) 전 정보 사령관이 이번 불법 계엄의 ‘막후 설계자’로 등장하면서 김 전 장관 등 계엄 주도 세력이 의도적으로 육사를 선별했다는 의심은 더욱 커졌다. 반대로 비육사는 철저히 배제됐다. 계엄을 총괄하는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이라는 이유로 ‘팽’당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관련 패러디물이나 조롱·비판 글이 넘쳐난다. 육사 공식 페이스북엔 최근 “대한민국 내란 정예장교 양성의 요람”, “육사는 생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계엄 주역이 모두 육사 출신이다”, “폐교하라”와 같은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생도들 사이에서도 “육사가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이라는 자부심이 망가지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육사 지원자 이탈은 더욱 심해질 것이란 반응이다. 육사 출신 예비역 장성은 “육사는 이제 역할을 다했다. 새로운 시스템에 의한 장교 양성이 이뤄져야 할 때다. 육사와 3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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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2025학년도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 합성 이미지. ‘오늘의 그대 미래의 계엄사령관’이라고 적힌 육사 조롱 글과 함께, 12·3 비상계엄의 ‘막후 설계자’로 등장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전역 뒤 역술인으로 활동한 사실을 비꼬는 듯한 이미지가 합성됐다. 엑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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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밭 된 군… 바로 세울 수 있을까

미군은 1964년 8월 7일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 의기양양하게 북베트남과 전면전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8년 베트남에서 미군에 의해 어린이와 부녀자 등 최대 504명의 민간인이 집단살해된 ‘미라이’(My Lai) 사건의 전모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민은 군에게서 등을 돌렸다. 미군의 잔혹성과 비윤리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와 함께 미국민 사이에 반전 분위기는 더욱 거세졌다. 물러설 곳이 없었던 미군은 1973년 11월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그 무렵 미군의 기강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세계 최강 군대라는 명성은 허울에 불과했다. 베트남전에서 패하고 돌아온 미군 수뇌부들은 이대로는 군을 유지, 운용할 수 없다며 대대적인 군 개편작업에 돌입했다. 미군은 당시 우리처럼 국민 개병제를 택했다. 하버드나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이들도 군에 입대했다. 누구나 가는 군대였지만 내부 기강은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미군은 우선 개병제를 없애고 모병제로 바꿨다. 전쟁을 통해 초급 간부들의 리더십 부족을 경험한 터라 무능한 간부 퇴출 작업에도 나섰다. 실제로 베트남전에서 미군 초급장교들은 적이 아닌 부하에게 등 뒤에서 총 맞아 죽는 경우가 적잖았다. 병사들과 간부들 월급을 이전보다 서너 배씩 올려 우수 전투인력 확보에 나서는 한편, 갈등이 잦았던 장교의 부사관 역할 분담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전력 증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91년 1월 걸프전 당시 미군은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세계 최강 군대의 명예를 되찾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에서 첫 국방부 장관을 맡은 이상희 장관은 ‘나사 풀린 군의 기강을 잡아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면서 군의 재조형(Reshaping)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미군이 16년 걸려 한 일이다. 수월할 리 없다. 대한민국 군대를 전부 다 바꾼다는 각오로 군을 리빌딩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군심 결집이다. 공백인 국방 수장에 누가 오는지, 그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가 중요하다. 더불어 전투 현장이 아닌 국방부와 육군본부만을 오가며 진급이 이뤄져 온 군 인사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의 절대 위기상황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며 “늘 군의 개혁에는 반대가 극심했다. 혜안을 가진 리더들이 밀어붙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형 군대’, ‘관리형 군대’ 잔재를 걷어내고 ‘전투형 군대’로의 변신은 향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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