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신경과학, 국내외 각축전
머스크의 뉴럴링크 앞서가지만 국내 기술 확보도 필요
전문가들, "관련 연구 윤리·법적 기준 필요"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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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뇌에 반도체 칩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로봇을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 거듭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Neural Link)’는 BCI 기술의 ‘전도사’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초 사지마비 환자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체스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했고 지난달에는 미국 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이 살아 있는 신경세포를 생쥐의 뇌에 이식해 외부 빛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또 다른 BCI 기업인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Precision Neuroscience)는 최근 1억200만달러의 투자금을 조달하며 약 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국내에서도 BCI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최근 이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 의견을 취합했다. 이들은 뉴럴링크로 대표되는 BCI 기술이 단순한 치료 기기를 넘어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상호작용 시대를 여는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기술 남용 방지를 위한 윤리적·법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BCI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임창환 한양대 교수는 "뉴럴링크가 처음 설립을 발표했을 때는 학계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2년 만에 실 형태의 전극을 이용한 바느질 로봇을 개발했고 2020년부터는 ‘더링크’ 시스템을 통해 무선으로 뇌 신호를 전송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기존의 바늘 형태 전극은 뇌가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발생했지만 실 형태 전극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며 "수술 시간도 1시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럴링크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바늘 형태였던 전극을 실 형태로 만들어 상용화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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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럴링크 외에도 여러 기업이 BC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싱크로스는 혈관 스텐트처럼 뇌혈관을 통해 삽입하는 ‘스텐트로드’를 개발해 2021년에 이미 인간 대상 임상실험 허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클린아텍은 뇌 표면에 부착하는 형태의 장치를 개발해 하지마비 환자의 보행을 돕는 데 성공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귀 주변에서 뇌파를 측정해 운전자의 졸음을 감지하는 ‘엠브레인’ 시스템을 개발했고 LG전자는 수면 중 뇌파를 측정해 수면의 질을 개선하는 이어버드형 장치를 출시했다.
◇AI와 뇌의 결합, 새로운 미래를 연다= 뇌과학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는 BCI 기술이 인공지능(AI)과 결합해 새로운 미래를 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긴밀하게 협업하면 그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예를 들어 위성사진 분석에서 AI와 사람이 협업하면 독립적으로 작업할 때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과 AI의 분석을 융합하면 정확도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의 컴퓨터와 AI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뇌를 닮은 새로운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분리되어 있어 인간의 뇌보다 훨씬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인간의 뇌는 1000억개의 세포가 프로세서이자 메모리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전구 두세 개 정도의 에너지만으로도 놀라운 성능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인간 뇌의 기능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AI와 공존할 것임을 예상한 것이다.
정 교수는 현재의 기술과 BCI를 접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는 "현재 판매 중인 로봇을 BCI 기술로 개량해 사람이 생각한 대로 로봇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100번의 실험 중 93번은 벽에 부딪히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래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인간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똑똑한 게 아니라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잘 사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작용 등 기초 연구 지원해야= 와이브레인의 이기원 대표는 BCI 기술의 의료적 활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이 넘는 마비 환자들이 있으며 이들을 위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뉴럴링크와 같은 BCI 기술은 의료기기로서 상용화가 임박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BCI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술의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 현재 뉴럴링크는 동물실험에서 안전성을 입증했지만 장기적 부작용과 면역 반응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박정환 서울대 교수는 BCI 관련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뇌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자극은 우울감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장기적인 연구비 지원을 통해 기초 연구와 임상 연구가 통합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선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하면 해킹 위험성도 존재한다. 임 교수는 "보안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민감한 신경 신호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뉴럴링크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한국형 뉴럴링크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연구개발(R&D) 지속 지원, 규제 정비와 실증, 국제 표준화 참여’ 등 세 가지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BCI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국산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우리 기술이 많이 뒤진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사람을 상대로 한 실험이 이어지면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는 만큼 관련 제도를 보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연구자들이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기술을 보고 있으니 협업을 통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섬세하게 성찰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임상적, 공학적, 기초과학적 측면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검토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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