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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얼음물 껴안고 버텼더니 또다시 ‘겨울’…1년이 된 부당해고 옥상투쟁[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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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북 구미시 구미 4공단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 지난 5일 해고 노동자 박정혜씨(39·오른쪽)와 소현숙씨(42)가 손을 흔들고 있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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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망요? 똑같죠. 일터로 돌아가는 거….”

경북 구미시 구미 4공단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옵티칼) 공장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 박정혜씨(39)가 지난 5일 일출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씨는 동료 소현숙씨(42)와 함께 외국인 투자기업인 옵티칼 구미공장 청산에 반대하며 지난해 1월8일 공장 옥상으로 올랐다. 이들은 200억원대 흑자를 내던 기업이 불이 났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하고 공장철거를 강행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화재보험금으로만 1300억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는 “여름에는 얼음물을 껴안고 버텼는데 이제는 한파에 감기에 걸렸다. 텐트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한기를 막기 어렵다”며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보니 동료들이 올려준 종합감기약으로 버틴다”고 했다.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필름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해온 옵티칼은 일본 닛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기업이다. 2003년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완공된 구미공장은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근거해 50년 토지 무상임대와 세제지원 등의 각종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2022년 10월 구미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자 옵티칼은 법인을 청산하기로 했다. 회사는 193명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내보내고 이를 거부한 노동자 17명을 정리해고했다. 이 중 7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닛토덴코의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 평택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닛토덴코가 구미공장 물량을 평택공장으로 이전하고 평택공장이 신규 채용까지 했다는 건 고용승계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박씨는 “같은 회사의 다른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춥고, 뜨겁고, 적막한 이곳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내가 이토록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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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오른쪽), 소현숙씨가 지난해 10월 농성 중인 텐트에서 나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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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회사의 고용승계 거부가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 구미공장은 불이 나기 전 물량이 늘어 100여명을 신규 채용했고 연 200억원대 흑자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측은 화재 직후 평택공장으로 물량을 옮긴 뒤 공장을 폐쇄했다.

옵티칼에서 16년을 일한 소씨는 “회사는 각종 혜택을 받아 수조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회사를 청산했다. 전형적인 ‘먹튀’”라며 “퇴직 위로금을 받고 싶으면 일본어로 반성문을 써서 내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1년 동안 고립된 공간에 있어 정신적으로 지쳐 갈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투쟁을 이어왔던 사진첩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전국에서 보내오는 격려와 성원도 큰 힘이 된다.

그는 “고공농성 300일을 맞아 지난 11월 3일 노동자·시민 1000여명이 연대버스를 타고 구미공장으로 모였다”며 “연대버스 무대에서 발언하신 분들 모두가 과거 회사를 상대로 고공에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성탄절인 지난달 25일에는 전국에서 보내 준 생수 수천여개로 창고가 가득 차기도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공농성 중인 두 노동자를 위한 생수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린 직후다. 회사는 지난해 9월 공장 내 시설의 물 공급을 끊었다.

박씨는 “우리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생수를 전국에서 보냈다는 말에 또다시 힘이 났다”며 “꼭 이겨서 내려오겠다. 전국의 동지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오는 10일~11일 옵티칼 구미공장에서 ‘한국옵티칼 박정혜·소현숙 고공농성 1년 희망텐트’를 연다. 두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 1년을 맞아 옥상 아래서 시민들이 함께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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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혜 조합원이 지난해 6월 텐트 안에서 얼음물을 안은 채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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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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