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 |
지난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경방) 자료를 무거운 마음으로 훑어봤다. 경방의 네 기둥은 민생경제 회복, 대외신인도 관리, 통상환경 불확실성 대응, 산업경쟁력 강화. 우리 경제에 당장 시급한 정책은 대부분 포함됐다고 본다. 85조원 규모의 민생사업 예산을 1분기에 절반 가까이(40%) 집행하는 등 속도감 있게 예산을 조기집행하고 추가 소비에 대한 소득공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관광 쿠폰 등 왕년의 내수 진작책을 긁어모았다.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적 관리는 대외신인도 유지에 필수적이고 역대 최대인 360조원의 무역금융 지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수출을 다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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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키우는 선택 중지해야
현 정국에서 ‘스탠드스틸’ 필요
최 대행 더 이상 흔들지 말기를
하지만 계엄·탄핵 정국의 불확실성 탓에 전반적으로 위험관리에 치중한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노동·교육·연금·의료 등 4대 개혁의 동력은 현 정부에서 사실상 사라졌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나 구조개혁이 중요하지만 당장 귀 기울이는 이가 많지 않다. 지난해 정부가 군불을 땠던 양극화 대책이 경방에서 빠진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1.8%다. 계엄 사태 이전에 나온 한국은행(1.9%)·KDI(2.0%) 등보다 낮다. 불안한 정치가 경제에 묵직한 돌덩이를 얹어 놓았다. 정부의 경제전망은 일반적으로 당국의 정책 의지(?)를 담아 국내외 기관의 전망치보다 0.1%포인트라도 높게 잡는 경우가 많았음을 고려하면 정부 전망치 1.8% 달성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추경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1분기 재점검을 거쳐 추가 경기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한 것은 추경의 시기와 규모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이견을 고려한 듯하다. 어차피 추경이 불가피한 만큼 여·야·정이 서둘러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기재부가 경방에 담고 싶었지만 차마 담지 못한 건 ‘지금 여기서 모두 스톱’을 뜻하는 현 정국의 ‘스탠드스틸(standstill)’이 아니었을까. 스탠드스틸은 정지 혹은 현상유지라는 뜻이다. 무역에서는 추가적인 보호무역 조치 동결을 가리킨다.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2013년까지 투자·무역 장벽 추가 설치를 동결하는 스탠드스틸에 합의했다. 농림부에선 가축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확산을 막기 위해 가축과 사람·차량·물품 이동을 일시 제한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지금 스탠드스틸은 현 정국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선택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탄핵의 길도 불확실성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 가본 길”이라고 한 달 전 칼럼에서 썼지만, 막판까지 수사와 영장을 거부하는 졸렬한 대통령의 행태나 조기 대선을 향한 야당의 과속 스캔들이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한덕수 총리는 탄핵당하기 전에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재판소 중 가장 약한 곳이 권한대행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선의로 보면 헌법재판관 임명 등 쟁점에 대한 여야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겠으나 결국 여당이 반대하는 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책임 방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고 결국 탄핵당했다. ‘대행의 대행’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은 총리보다 힘이 덜 실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는 국무회의에서 계엄에 반대했고 여야 양쪽의 욕을 들으며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하는 응급조치로 헌재 탄핵 절차를 살려냈다.
연말 국무회의에서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한 김문수 노동부 장관 등을 향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고민 좀 하면서 얘기하라”고 직격했다. 오죽 답답하면 한은 총재가 정치 발언까지 했을까. 총리보다 약한 ‘대행의 대행’ 체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보다 엔트로피(무질서)가 높아지는 선택은 피해야 한다.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선택을, 당신도 모르는 답을 최 대행에게 요구하지도 말라.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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