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몫 없는 이들의 몫 찾기 위한 ‘전면 개헌’ 필요”[신년기획, 더 나은 민주주의로]④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탄핵 너머’ 세상 그리는 광장의 목소리 봇물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넘어 약자 권리 담아야

경향신문

한 시민이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열린 집회 중 “차 빼라”는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전날 트랙터를 몰고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남태령 일대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정효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번 탄핵 광장이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와 달라진 점은 응원봉의 등장만은 아니다. 여성·성소수자·농민·장애인 등 소수자들이 전면에 등장해 ‘나중에’ 대신 ‘지금 당장’을 외치면서 함께 싸운다. 탄핵이라는 단일 구호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만큼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태원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지난달 9일 ‘해방 80년, 한국 사회의 대전환을 위하여- 최대주의적 개헌을 시도하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의 정치적 세력 구도를 감안하면 개헌은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 쟁점으로 국한될 것”이라며 “무려 40년 만에 닥친 개헌 정국에서 고작 이 정도 내용의 개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엄청난 정치·사회적 손실”이라고 밝혔다.

1987년 개헌으로 출범한 6공화국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낡은 질서에 대항하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힘인 ‘제헌권력’은 이미 87년 체제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몫 없는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제헌권력은 이미 ‘탄핵 너머’를 그리고 있다.

경향신문

2018년 3월26일 국회에 접수된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헌법 개정안.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을 “노래방 도우미”로 소개한 A씨는 지난달 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수술 등 권력구조 개편 중심의 개헌과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것 사이엔 간극이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진 연구교수는 “사회적 약소자들 및 그들을 대표하는 세력은 적극적으로 독자적 개헌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특히 헌법 1조2항에 나오는 ‘국민’이라는 명칭을 어떻게 바꿀지, 여성·성소수자 권리를 어떻게 기입할 수 있을지, 장애인이나 이주자 등의 권리는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몫 없는 이’들이 제 몫을 찾기 위한 싸움인 정치는 헌법에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새기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녹색당·정의당이 마련한 시국집담회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에서 감세 정책 도입 때 기가 막히게 작동하는 정치가 “집 구하는 게 녹록지 않아서 더럽고 치사해도 월세 내면서 붙어살아야 하는” 청년의 주거권 앞에선 사라진다고 짚었다. 그는 “이 광장의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라며 “집 문제, 전세사기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동 의제도 한국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빠뜨릴 수 없는 쟁점이다.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터의 민주주의’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발의한 헌법 개정안에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한 수준의 임금 지급, 공무원 노동3권의 원칙적 보장,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정책 시행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뿐 아니라 상시·지속 업무에 대한 직접·무기고용 원칙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이 담긴 헌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기후위기가 초래한 피해의 불평등을 바로잡고, 자연에도 권리를 부여하는 ‘기후정의’를 헌법에 도입하는 등 기후·생태 헌법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1987년 개헌 당시는 기후위기를 염두에 두지 못한 때였기 때문이다.

다만 권력구조 개편과 사회권 강화를 이분법적으로 다룰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은 “두 가지를 구분하니깐 권력구조 개편이 ‘대통령제냐, 내각제냐’의 문제로 좁혀지는 면이 있다”며 “엘리트에게 집중된 권력을 시민에게 분산시키는 방안을 논의하면 권력구조 개편과 약자들의 권리가 맞물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후정의, 사회권 등의 대원칙을 헌법에 새길 순 있지만 구체적 내용까지 담는 방식은 한국 헌법 구조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장 기획위원은 향후 개헌안을 만드는 주체는 국회보다는 시민사회가 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양당구도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현재 국회 구성이 시민사회의 다양하고 역동적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추첨으로 뽑힌 시민 등이 참여하는 숙의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