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3월20일 당선인 신분으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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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의 공간서 저항 상징 된 미 내셔널몰처럼
내란 사태로 분노한 민심, 공간 새롭게 규정
설계된 공간·내재된 의식 ‘불변의 것’ 아냐
현대 사회의 프로세스는 만들어가기 나름
대통령 윤석열의 이미지는 원래 독선, 막무가내, ‘무데뽀’ 같은 것들이었다. 12·3 비상계엄 이후엔 그가 아주 미스터리한 인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 부정선거론에 심취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군대를 동원해 부정선거의 전모를 밝히려고 했다는 윤석열은 마치 총기 난사 직전 테러의 명분을 강변하는 ‘외로운 늑대’ 같았다. 극단적 고립 속에서나 키울 법한 망상을 어떻게 유능한 관료들에 둘러싸인 대통령이 하게 됐을까?
이 미스터리와 씨름하다 보면 계속 샅바를 붙잡는 장면이 하나 있다. 2022년 3월, 윤석열은 대통령 당선 직후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겠다며 취임 전 반드시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을 남겼다. 청와대란 공간이 제왕처럼 행동하게끔 대통령의 의식을 지배했다는 얘기다.
윤석열은 아마 이 말을 그가 평소 존경한다는 윈스턴 처칠에게서 따왔을 것이다. 영국 총리였던 처칠은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무너진 국회의사당 재건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나중엔 그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 어감상 ‘짓는다(shape)’보다 좀 더 센 ‘지배한다’를 쓴 것으로 비춰볼 때, 윤석열은 공간 구조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처칠보다 더 강하게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그의 완고한 공간론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집무실을 옮겼다는 대통령이 불통을 넘어 무력도 서슴없이 동원하는 전체주의 총통과 같은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의 말대로 공간이 의식을 지배했다면 없었을 일이다. 이 또한 풀어야 할 미스터리다.
윤석열의 애초 의도와 달리 용산 대통령실이 청와대 못지않은, 혹은 더 심한 제왕적 공간 구조를 갖췄을 수도 있다. 언뜻 봐도 정확한 좌우대칭에 널따란 앞마당을 둔 대통령실 건물은 그 자체로 꽤 권위적이다. 대통령·참모진·취재진 등이 한 건물을 쓴다고는 하나,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이 6~7개월 만에 중단된 것에서 보듯 한 공간으로의 집적 그 자체가 활발한 소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분석에 앞서 전제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하는 건 ‘싱크대 높이가 성차별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일반적인 싱크대 높이가 남성 평균 키가 아닌 여성 평균 키에 맞춰 결정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부엌에 출입하지 않는 세태가 싱크대가 낮아서 생긴 건 아니다. 남성이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는 현실의 산물일 뿐이다. 요즘 새 아파트에 설치하는 싱크대는 전보다 높아진 경우가 많은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남성의 가사노동 분담이 커진 경향, 즉 성 관념 변화에 따라 싱크대도 높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혹시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건 아닐까?
건축가 등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를 굳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든 공간이 사람의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 바꾼다면 그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하지만 적지 않은 예가 그 반대, 즉 의식이 공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기왕 국가원수의 공간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주방보다는 스케일을 한껏 더 키워서 살펴보자.
2021년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성조기 물결을 이룬 워싱턴 내셔널몰. 가운데 구조물이 워싱턴 기념탑이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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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중심엔 그 유명한 ‘내셔널몰’이 있다. 역대 대통령 기념 시설부터 백악관, 주요 정부청사, 국회의사당까지 모두 내셔널몰 안팎에 배치됐다. 중심부엔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닮은 워싱턴 기념탑이 있는데, 1889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짓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와 제니가 베트남 반전집회 한복판에서 재회하는 순간을 인상 깊게 봤다면, 연단에 선 포레스트의 시야에 인공호수 너머 아득히 먼 곳에 우뚝 선 워싱턴 기념탑이 들어온 장면도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동서로 3㎞에 이르는 내셔널몰에선 이렇게 각종 기념비적 건축물이 뚜렷한 소실점을 형성하며 위엄을 자랑한다.
2017년 9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륙간탄도로켓장착용 수소탄시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시 군민 경축대회. 불꽃 너머로 가운데 보이는 구조물이 주체사상탑.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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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삼는 북한으로 가보자. 북한 방송에선 김일성광장이 곧잘 등장한다. 거대한 미사일과 탱크를 이끌고 열병식을 거행하거나, 북한 주민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내셔널몰과 마찬가지로 이 광장 주변엔 북한의 주요 정부청사와 인민대학습당 등 기념비적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광장에 접한 대동강 건너편으로는 전체적인 윤곽이 오벨리스크와 비슷한데 표면은 다소 울퉁불퉁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주체사상탑’이다. 높이가 170m로 워싱턴 기념탑(169m)과 거의 같다. 높이뿐만이 아니다. 김일성광장에서 대동강 너머로 주체사상탑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잡으면, 포레스트의 눈에 비친 것과 유사한 풍경이 펼쳐진다. 국가 중요시설로 둘러싸인 광장, 광활하고 잔잔한 수공간,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시퀀스를 워싱턴과 평양이 공유한다.
내셔널몰과 김일성광장의 설계자는 의식을 같은 방식으로 지배하려고 했던 게 틀림없다. 이곳에 선 사람은 거대한 공동체의 일부란 자부심을 느껴야 하며, 이 공동체를 세운 지도자에게 경외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셔널몰을 둘러싼 의식은 1960년대 이후 급격히 바뀌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은 내셔널몰에서 반전·민권운동 등 저항의 역사를 떠올린다.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 일에 이렇게 종종 실패한다. 반면 김일성광장은 열병식과 매스게임의 장소로서 여전히 통제와 권위주의가 지배한다. 언제까지 설계자의 의도가 통할 수 있을까? 1989년 이후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탱크를 막아선 어느 남자를 떠올리게 되는 걸 보면 아마 영속적이진 않을 것 같다. 리처드 윌리엄스는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에서 ‘도시는 설계가 아닌 프로세스의 결과’라고 했다.
60여년 전 내셔널몰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사건이 최근 서울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당일 ‘접수’하려고 했던 국회의사당 주변으로 모여든 시민들이 이 공간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풍경. 미국의 내셔널몰을 연상시키는 장엄한 도로는 운집한 시민들이 든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물들었다. 서성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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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은 태생적으로 내셔널몰의 권위를 모방하려고 했던 건물이다. 1960년대 후반 입지를 고를 때부터 의사당 앞에 ‘장엄한 도로’를 놓을 수 있는지를 조건 중 하나로 고려했으며, 완공 후엔 의사당 일대에 의사당 높이(40m)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는 규제가 생겨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파크원·IFC몰 등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동여의도’와 달리 ‘서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획일적으로 낮은 이유다.
지난 12월, 이 장엄한 도로는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물들었다. 엄숙한 민중가요 대신 경쾌한 K팝이 울려 퍼졌고, 철저하게 50·60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서여의도가 이때만큼은 20·30대 여성들의 저항으로 가득 찼다. 윤석열의 폭거가 이곳에서도 의식에 대한 공간의 지배력에 균열을 낸 셈이다. 비상계엄에 분노해 뛰쳐나온 시민의 의식이 ‘국회의사당’이란 공간을 새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 가결로 시민의 열망에 부응했던 것처럼 이 과정에도 동참하면 좋겠다. 국회의원들은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담장을 넘으며 그 담장이 평소 국회를 얼마나 폐쇄적으로 만드는 장애물인지를 깨달았을까? 계엄군의 진입을 막으려 치열하게 싸웠던 의사당 정문은 사실 국회의원만 드나들 수 있으며, 방문자는 후문을 이용해야 한다는 규칙은 민주정이 아닌 군주정에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우리가 쓰는 공간도, 우리가 지닌 의식도 모두 불변의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프로세스 위에 있다. 프로세스는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허남설 기자 |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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