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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다들 나처럼 생각할걸?’… 내 생각이 대세라는 착각[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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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합의 효과

내 생각이 표준이고 다수라 여겨… 끼리끼리 어울리며 “우리가 정답”

의견 다르면 이상한 사람 취급…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편향된 알고리즘-SNS도 문제… 소수 제기한 음모론 빠지기도

“나도 틀릴 수 있다” 겸손 필요

동아일보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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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는 바보가 어딨어?”

내 생각엔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살다 보면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바보’와 만날 때가 있다. 심지어 매우 자주, 곳곳에서 맞닥뜨린다. 가족 친구 동료 같은 가까운 사이부터 온라인 기사 댓글로 싸우는 상대 진영 지지자까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무장한 상대 주장에 대화를 포기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돌아선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정말 내 생각은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을까. “길을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라고 큰소리쳤을 때, 정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생각을 지지해 줄 것인가. 내 생각이 정답이자 기준이라고 여기는 것부터가 큰 착각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인지 오류를 허위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부른다. 합의 착각 효과 또는 거짓 합의 효과라고도 한다. 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고, 반대 의견은 비정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싸움 같은 일상적 순간부터 요즘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말이 맞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누군가 얼굴이 떠올랐다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한번 살펴보자.

● 나와 생각 다르면? “이상한 사람”

허위 합의 효과라는 말이 낯설어 보이지만 학계에 알려진 지는 꽤 오래됐다. 리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1977년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할 학생 104명을 모집해 이들에게 커다란 광고판을 들고 30분 동안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에는 ‘조스(샌드위치 가게 이름)에서 식사하세요’ 같은 홍보 글귀가 쓰여 있었다.

104명 가운데 광고판을 들고 학교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한 사람은 52%, 싫다고 한 이는 48%였다. 대략 반반이었다. 아마도 절반은 이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창피해서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뒤 학생들에게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결정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광고판을 들고 돌아다니겠다고 한 학생들은 61% 정도가 제안을 수락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제안을 거부한 학생들은 70%가 제안을 거부했을 거라고 봤다. 모든 학생이 스스로가 다수 의견 쪽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광고판을 들고 다니겠다고 한 학생과 거부한 학생이 각각 어떤 성격일지 예상해 보라는 후속 질문에서 드러났다. 학생들은 자기와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을 괴팍하고 비협조적이며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봤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은 수가 더 적을 뿐 아니라 성격도 비정상적이라고 바라본 것이다.

● 반대 의견 들으면 불쾌… 끼리끼리 어울려

정치 종교같이 주요 신념과 관련된 주제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다른 주제보다 내 가치관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려는 동기가 강해서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널리 퍼져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적 안정감이 생길 뿐 아니라 ‘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 덕에 자존감도 높아진다.

정당 지지자 간 허위 합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 당시 쟁점이던 테러방지법 찬반 의견을 알아본 연구가 있다. 20∼50대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해당 법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매우 반대’(26.3%), ‘약간 반대’(17.2%), ‘잘 모르겠다’(6.9%), ‘약간 찬성’(27.1%), ‘매우 찬성’(22.5)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제외하면 반대 43.5%, 찬성 49.6%로 양쪽이 비슷했다.

추가로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 몇 % 정도가 테러방지법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해당 법안을 ‘매우 반대’하는 이들은 28.6%가, ‘약간 반대’하는 이들은 36.9%만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 전체 찬성 의견(49.6%)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반대로 ‘매우 찬성’하는 이들은 65%가, ‘약간 찬성’하는 이들은 50.6%가 찬성할 거라고 예상했다.

특히 매우 반대하거나, 매우 찬성하는 사람들에게서 허위 합의 효과가 더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념이 강할수록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다.

자신만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듣기 싫어한다. 위협적이고 불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똑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 편끼리만 어울리면서 ‘우리가 정답’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때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확증편향도 이를 부추긴다.

● “오, 하느님도 내 생각과 같을걸?”

이 같은 경향은 심지어 신의 뜻을 유추할 때도 나타난다. 각자가 믿는 신의 뜻을 해석할 때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 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긴다. 남들도 다 나에게 동조할 거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신의 영역까지 확대되는 셈이다.

니컬러스 에플리 미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종교가 있는 922명에게 낙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그리고 각자가 믿는 종교의 신은 찬반 중 어느 쪽일지, 일반 국민은 찬반 중 어느 쪽이 많을지 예측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해당 법안에 찬성하면 찬성하는 대로, 반대하면 반대하는 대로 신도 자기 생각과 똑같을 거라고 여겼다. 이런 경향성은 나와 의견이 같은 일반 국민 비율을 예측한 것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다. 반면, 종교를 믿지 않는 77명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더니, 자기 생각과 신의 생각이 같을 거라고 보는 경향성은 상당히 낮게 나타났다.

내 의견을 말할 때와 신의 뜻을 추측할 때 뇌의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에플리 교수 연구진은 종교가 있는 17명에게 안락사 합법화 같은 논쟁적 주제에 대해 자신, 각자가 믿는 신, 일반인 의견은 각각 어떨지 차례로 생각하고 답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 활동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뇌 내측 전전두피질 등 내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부위와 신의 뜻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된 부위가 똑같았다. 내 의견과 다른 사람 의견을 답할 때 활성화된 뇌 부위도 일부 겹치기는 했지만 신의 뜻을 생각할 때 더 높은 일치율을 보였다. 연구진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의 뜻을 추론하는 과정과 자기 신념을 생성하는 과정의 뇌 활동이 상당히 유사했다”며 “신의 뜻을 추론할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 자기중심성 부추기는 알고리즘

이렇게 오류를 범하기 쉬운 우리 습성은 내 취향을 반영하는 디지털 알고리즘과 만나면 더 강력해진다. 편향된 정보만 보며 고정관념이 더 강화될 수 있어서다. 또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들 의견을 대세론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특정 취향 맞춤형 정보만 보는 ‘필터 버블’,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된 SNS 게시물에 더욱 빠져드는 ‘토끼굴 효과’ 등도 이를 잘 나타낸다.

알고리즘은 소수 의견도 보편적 주장인 것으로 속게 만든다. 극소수가 제기한 음모론에 빠지기도 쉽다. SNS 팔로어들이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우리 편’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상승효과가 난다. SNS 같은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허위 합의 효과를 연구하는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은 원래 자기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SNS 효과까지 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교수는 “일단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태도를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며 “우리 모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듣기 거북하더라도 반대 의견을 들어 보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 교수는 “구미에 맞지 않는 정보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만 만나기보다 반대되는 사람도 골고루 만나고, 미디어를 이용할 때도 양쪽을 대변하는 미디어를 고루 이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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