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비주의 연구하는 성해영 서울대 교수… 직관 능력 있다면 공적 이익에 써야
國事에 무속 개입돼선 안 돼… 행동 무관하게 결정된 미래 없어
자기 業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 종교 약화에도 영성 찾는 이 늘어
神氣-文氣 모두 강한 한국인… 갈등 넘어 세계사적 의미 찾을 것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성해영 종교학과 교수는 “국사(國事)에 무속이 개입됐다는 얘기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온 적이 있나 싶다”며 “지성과 윤리를 동반하지 않은 종교적 직관은 위험할 뿐”이라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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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법 계엄은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점집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돼 더 큰 충격을 줬다. 이전에도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주변의 무속인들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나 공천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권력 주변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최근 무속의 영향력이 이전에 비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종교학과 신비주의 전문가인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57)를 2일 만나 한국의 샤머니즘과 종교적 특징에 관해 물었다. 성 교수는 “종교적 직관 역시 이기심을 벗어나 공공성과 공적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지성과 윤리를 동반하지 않으면 파멸로 귀결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고 권력자와 정치 행위가 무속인의 점사(占辭)와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샤머니즘은 굉장히 원초적이고 가장 오래된 종교라고 할 수 있고, 정치와 종교는 과거에도 긴밀하게 결합했던 게 사실이다. 좋고 나쁜 걸 가르는 관건은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있다. 종교든 무속이든 공공의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이기심이나 사적 욕망 충족에 쓰이면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윤 대통령 부부 주변에 무슨 ‘도사’니 ‘법사’, ‘보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이 만약 자그마한 직관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지적, 윤리적으로 훌륭했다면 그런 식으로 썼겠나. 종교적 직관이 발달한 사람이 지성과 윤리 영역에서 어긋나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고 더 빨리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 또한 고위공직자는 평범한 개인과는 요구되는 공공성의 정도가 다르다. 국사(國事)에 무속이 개입됐다는 얘기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온 적이 있나 싶다.”
―‘도사’들이 정작 사태가 이렇게 될 것을 몰랐다. 종교에선 미래 예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독교, 불교 등) 큰 종교의 교리에도 미래 인류 역사에 대한 예측이 담겨 있긴 하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전통은 행동과 무관하게 개인의 미래가 결정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 붓다는 ‘너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너의 현재와 과거를 보라’고 했다. 과거의 흐름, 지금 하는 일이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얘기다. 성경에서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도 같은 뜻이다. 누군가에게 미래에 대한 직관이 있다고 해도, 어렴풋할 뿐 명확하고 완벽한 형태로 보이는 건 아니라고들 한다.”
―새해를 맞아 점을 보려는 이들이 꽤 있다.
“점 보는 것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만약 어느 무속인이 ‘무슨 달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고 치자. 언행을 조심하면 되고, 설령 나쁜 일이 닥친다 해도 마음의 준비를 잘하면 자신이 성숙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당이 부적을 사라거나 굿을 하라고 한다? 당연히 피해야 한다. 샤먼도 제대로 된 이들은 끊임없이 수행해서 맑은 사람이 돼야 무업(巫業)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사(邪)가 끼어서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누구를 해코지하는 게 목적인 무당은 소위 ‘영빨’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기심이나 개인의 욕심을 위해 혹세무민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오래 가겠나.”
―‘내 말만 따르면 된다’는 무당도 있는데….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죽음 직전 회개한 강도는 구원했지만 그러지 않은 강도는 구하지 못했다. 붓다는 누군가가 많은 재물과 음식으로 천도재를 지내며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고 하자 ‘너희는 나무를 가라앉게 하고, 쇠를 뜨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기의 업(業)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물며 샤먼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큰 종교인들이 항상 강조하는 덕목이 겸손이다. 섭리든 신의 뜻이든 미래든 개인의 삶이든 특정한 누군가가 모두 이해하거나 결정할 순 없다고 말한다.”
―샤머니즘과 종교는 무엇으로 구분되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인간의 궁극적 삶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차원과의 통합적 관계에서 나온다고 본다는 점에서 종교는 샤머니즘과 연속성이 있다.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 점집에 가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 가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 종교는 종교적 직관으로 알게 된 존재를 지성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통찰을 가지고 타인과 어떻게 함께 살지를 윤리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샤머니즘과 큰 차이가 있다.”
―종교 신비주의와는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나.
“의식이 변형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의 직접 체험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선 상통한다. 하지만 샤먼이 거기서 그치는 데 비해 신비주의는 존재의 근본적, 궁극적 원천 혹은 실재와 하나가 돼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얻으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 차원의 샤머니즘은 아메리카 원주민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요즘 한국에서 샤머니즘이 전보다 더 확산했다는 의견도 있다.
“원래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 종교가 강한 나라에선 샤먼이 사라진다. 세계 종교가 센데 무속도 강한 한국은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한데 최근 제도화된 종교가 약화했다. 점술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은 십수 년 전이라면 종교인들의 항의에 지상파에서 방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무속이 개인의 삶에 직접 다가가면서 과거 종교가 해주던 역할을 일부 대신해주고 있다. 젊은층의 실용주의적 태도도 한 원인이다. 젊을수록 무종교인이 많은데, 이들은 샤머니즘을 전통적 종교의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또 샤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제도적 종교가 따라가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동성 있게 사람들 사이로 파고드는 것도 한 이유다.”
―한국인 중 무종교인이 60%에 이른다는데….
“그렇다고 그 60%가 모두 유물론자냐면 또 그렇지 않다. 무종교인 가운데 8, 9할은 종교인은 아니어도 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본다. 기존엔 종교성이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종교를 통해서만 구현됐지만 20세기 들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진 않다’는 이들이 생겨났다. 특정 종교에 소속된 신도는 아니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종교와 영성이 꼭 같지는 않다는 뜻인가.
“우리나라도 불자는 주는데, 템플스테이하는 사람은 늘지 않나. 가톨릭 성지인 산티아고 길을 순례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천주교인이 아니다. 명상이 기존 종교의 맥락을 벗어나 확산하는 것도 요즘 시대의 특징이다.”
―미래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종교의 영역이 더 축소되지 않을까.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역할 중 많은 것을 대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은 유물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와 마음의 깊은 차원들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데 더욱 집중하지 않을까. 과거엔 소수의 사람만 종교적 수행이 가능했다면 미래엔 누구나 영성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종교 간의 벽도 오늘날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의 종교적 특징은….
“인간이 수행 등을 통해 깨달음 같은 비범한 종교적 체험을 하고 존재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널리 받아들인다. 이런 경향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일부 종교에선 궁극적 실재와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다.”
―더 설명한다면….
“한국인은 신기(神氣)가 강하다. 굿판이 벌어지면 참여자들이 집단적 엑스터시 상태에 이른다. 교회의 부흥회도 흑인과 한국인이 가장 열정적이라고 하지 않나.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음주가무’ 기록에서부터 오늘날 BTS까지, 신명 나게 노는 것도 너무 잘한다. 신기만으론 문화를 발전시키기가 어려운데 문기(文氣)도 강하다. 한쪽이 세면 한쪽이 약하게 마련인데 우리는 둘 다 세다. 팔만대장경을 만들었고, 유교 이념으로 조선 500년을 운영했다. 중국에서도 그렇게 세게 못 했다. 단군 신화부터가 천손이 강림해서 정치와 종교의 이상,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를 실행하려고 한 것 아닌가.”
―그래서 갖게 된 정신적 특성이 있다면….
“신기와 문기는 모두 현실의 삶과 맥락을 넘어서는 걸 지향한다. 지상의 질서를 벗어나 이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한국인만큼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 높은 이상을 가진 이들도 드물다. 그래서 타협이 잘 안 되고, 갈등도 심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큰 탓에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나.
“개인의 삶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엔 모르지만 나이를 먹은 뒤 더 큰 의미의 틀에서 통합이 된다. 우리 현대사가 식민지배를 겪고 외부에서 들어온 이데올로기와 관념 체계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면서 분단까지 됐지만 나라가 망하진 않았다. 이번 계엄도 결국 실패했다. 억압돼 있던 트라우마가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 내부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분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라는 게 죽지만 않으면 인간을 성숙시키잖나. 한국이 온갖 갈등을 넘어 스스로의 세계사적 내러티브를 긍정적으로 완성할 것이라고 본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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