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사진=뉴스1 |
#2014년 4월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좌초됐다.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은 오전 경제장관회의를 마친 뒤 오찬 등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팽목항으로 내려갔다.
그날 이후 이 장관은 팽목항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과 함께 통곡하며 먹고 잤다. 그렇게 지낸 날이 136일이다.
팽목항과 안치실 사이를 오가며 구조 상황을 보고받았다. 하루가 멀다고 유족들에 사죄하며 엎드리고 엎드렸다. 처음 며칠은 겨를이 없었는데 나중에는 유족들에 죄스러워 이발도, 면도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 출신 장관의 '쇼'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4개월 넘게 가족을 잃은 이들로부터 온갖 욕을 듣고 함께 울고 불편한 잠자리를 마다치 않는 쇼쟁이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금실, 표창원, 조국 같은 진보 진영 사람들도 이 장관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칭찬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후 매년 기념식마다 진도 팽목 추모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 100여명이 광화문광장에 몰려들었다. 55일째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족에 대한 상식 밖 조롱이었다. 보상금 관련해 유족들에게 '세월호 시체팔이' 운운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시체팔이' 선동에 거리낌 없는 세력은 2022년에도 있었다. 공격 대상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었다. 이들은 "나라 구하다 죽었냐" "시체팔이 족속" 같은 오물 같은 말을 쏟아냈다.
정부나 정치권은 딱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중에는 여야 정쟁거리로 치부돼버렸다.
극명한 두 장면을 나열한 건 무안국제공항 참사 때문이다. 참사 수습 말미는 책임 규명과 보상일 텐데 '시체팔이' 저주가 또 등장할까 걱정된다. 세월호 때는 이주영이라는 '어른'이 있어 일베 무리가 날뛰어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유족이, 국민이 위정자들로부터 원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공감'일 것이다.
#'공감'의 미덕이 공직자에게만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시대에 드리운 심리적 공황을 이겨내는 데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미덕일 테다.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 글에서 제시한 '선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유대인 대량 학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음에도 자신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의 반대다. 중대한 결단 없이도 슬픈 이들을 후원하고 본인의 장기를 기증하며 공적 가치를 높이는 데 헌신하는, 그런 행동들이다. 관념으로서 선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착한 행동의 일상화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고 했다. 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토양이 좋아야 열매가 잘 열리듯이 말이다.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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