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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주정완의 시선] 대통령 권한대행의 무거운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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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양쪽 모두 불만이 있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2월 31일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한 일이다. 여당은 왜 두 명을 임명했느냐고 반발하고, 야당은 왜 국회가 의결한 세 명 중 한 명은 보류했느냐고 반발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의 내부 반발에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데 대해 최 대행은 ‘정치적 불확실성 제거’와 ‘경제·민생 위기 가능성 차단’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혼란이 더 깊어지면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고심이 느껴진다. 이번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고 할 수 있다.



최상목 대행 결단에 한고비 넘겨

65년 전 허정 내각 수반의 교훈

“결단이 필요할 땐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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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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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니라 정부조직법에 의한 선순위 국무위원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게 처음은 아니다. 벌써 65년 전이지만 선례가 있다. 1960년 4·19로 이승만 대통령과 장면 부통령이 모두 사퇴하자 수석 국무위원이던 허정 외무부 장관이 약 100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헌법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지만 그때는 과도정부 내각 수반이라고 불렀다.

허 전 수반은 자신의 회고록(『내일을 위한 증언』)에서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 대한 기록과 감상을 남겼다. 그는 “과도정부 수반인 나는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횃불을 들고 민주주의 제단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마지막 주자와도 같았다”며 “자유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설득과 의논을 통해 의견의 일치를 구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고 적었다.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내각 수반 재임 중 성과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도 있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한국 땅을 밟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울역·남대문 앞에서 진행한 카퍼레이드에선 10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려 열렬한 환영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굳건한 한·미 동맹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경계하고 정국 안정에 기여했다.

허 전 수반의 정치적 결단이 야당(민주당)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전세기를 이용해 미국 하와이로 떠나보낸 일이었다. 이후 국회에서 허 전 수반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일부 야당 의원은 “범인을 도피시켰다”며 허 전 수반의 문책을 주장했다. 다만 곽상훈 국회의장은 야당 소속이지만 “잘했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허 전 수반은 “이 박사 출국 문제로 논란이 많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출국 조치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단순히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결단이 필요할 때는 결단을 내린다는 과단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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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9일 하와이 망명을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을 전송하기 위해 허정(오른쪽) 당시 과도정부 수반이 동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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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직무정지 중인 한덕수 총리에게도 결단의 기회는 있었다. 그에겐 무엇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을 준수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세 명의 임명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국회의 탄핵소추를 자초했다. 한 총리는 ‘여야 합의’를 헌법재판관 임명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다.

헌법 111조 3항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3인은 국회가 선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선출은 국회의 권한이고 임명은 형식적 절차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입장이고 헌법학자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헌법학자 100여 명이 모인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 회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세 명을 임명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공개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한 총리 탄핵소추안을 성급하게 통과시킨 야당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이미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는 한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문제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한 달도 채 안 돼 세 명이나 오락가락하는 건 주요 선진국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록 임시직이지만 그 책임과 권한은 대통령 못지않게 막중하다. 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고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권한대행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정치권은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라면 민생 안정을 위해 협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권한대행에 대한 과도한 흔들기는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치적 혼란을 더욱 키울 뿐이다. 최 대행이 마지막 순간까지 헌법상 책임과 의무를 다해주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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