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리즌(James Reason) 영국 맨체스터대 명예교수는 복잡한 산업 환경에서 참사가 발생하는 원인을 ‘스위스 치즈 모델’로 설명했다.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스위스 치즈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다시 쌓았을 때 드물게 치즈 구멍들이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틈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치즈 조각은 재난을 막는 방벽, 구멍은 막지 못한 위험을 의미한다. 안전장치를 여러 겹 두더라도 우연히 동시에 결함이 노출되면 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 착륙(비행기의 몸통이 직접 땅에 닿아 착륙하는 것) 중 외벽에 충돌하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리즌 교수의 스위스 치즈 모델을 이번 참사에 빗대면 제주항공 경영진, 시간에 쫓기는 정비팀, 완화된 정비 규정, 혼자 일하는 조류 퇴치반, 공항 설계도 등이 하나의 치즈 조각이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구조물(둔덕)이 항공기와 충돌할 때 부서지지 않아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국토부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공항시설 설계, 건설을 총괄하는 곳이다. 참사의 1차 원인은 조류 충돌로 드러나고 있는데, 무안공항 주변은 평소 새들이 많아 조류 충돌 사고가 잦았던 곳이라고 한다. 참사 당시 조류 퇴치 인력은 1명뿐이었다. 지난 2019년 이후 5년간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조류 충돌은 총 10건으로, 지방공항 14곳 중 운항편수 대비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LCC)의 안전 문제는 매번 지적 대상이다. LCC의 안전사고가 빈번해지자 정부는 2016년에 항공기 1대당 정비사를 12명으로 늘리라고 했다. 그러나 업계가 획일적 기준이라고 반발하자, 꼭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고’로 조정했다. 현재 LCC 중 국토부의 권고를 지킨 곳은 한 곳도 없다.
항공기 정비 시간이 촉박했다는 정황도 있다. 국토부는 기종별로 이륙 시 최소 정비 시간을 정하고 있는데, 사고가 난 B737의 최소 점검 시간은 고작 28분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정비팀은 20여 개 항목을 살펴봐야 한다. 항공기를 자주 띄우기 위해 최소 정비 시간만 지키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해당 사고기는 참사 이틀 전부터 48시간 동안 총 8개 공항을 13차례 오가는 일정을 소화했고, 각 공항에 머무르는 시간이 1시간 안팎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이번 참사의 원인을 두고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모두 규정을 준수했다고 말한다. 각 단계에서 규정은 최소한으로 지키고 ‘설마 사고가 날까’ 하는 마음들이 모여 재앙이 됐다. 인간이 만든 절차, 규정, 법은 완벽하지 않다.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확한 원인 조사로 각 단계에서 드러난 결함을 확실히 차단해야 한다.
이인아 기자(ina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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