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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붉은 고기’ 뒤로하면 ‘생명의 초록빛’ 다가온다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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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달을 채식으로 시작해보자. 채식은 자신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고, 지구에도 좋은 식습관이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우선 일주일만 채식을 해보자. 아마도 올해 나 자신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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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0대 중반이었던 임동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시공사 펴냄)이라는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 세계적 아이스크림 기업 배스킨라빈스의 후계자를 포기하고 식생활 운동에 뛰어든 존 로빈스는 고기와 가공식품이 몸과 환경을 망치고 있는 현실을 매섭게 비판했다. 밤새 책을 읽은 뒤 그는 채식의 길로 들었다.



당시 그는 외식과 고기를 즐기며 흡연을 하고 운동을 싫어하던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혈당과 혈압이 높고, 지방간과 만성질환이 있었으며 신장 167㎝에 체중은 74㎏이었다. 현미를 기반으로 한 채식과 매일 30분~1시간 운동을 병행하자 한 달 만에 10㎏, 3개월 만에 17㎏이 감량되며 혈액 수치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2004년에는 경남 지리산 산청으로 이주해 농사지으며 ‘농부 의사’로 알려졌다. 채식하는 의료인 모임 ‘베지닥터’의 상임대표를 역임했고 채식평화연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한 임 원장은 “며칠만 채식을 경험해도 몸은 변화를 느낀다. 물론 먹거리와 함께 적정한 수면, 마음건강, 운동 등을 병행해주면 효과는 더욱 좋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국내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인구는 크게 늘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채식 인구는 2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약 15만 명이었던 2008년에 비하면 폭발적인 성장이다. 콩고기, 두부면 등 대체 식품도 대중화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비건 인증을 받은 식품은 2021년 기준 286개로, 2019년 대비 151% 증가했다.



지난해 대표적 건강 트렌드였던 ‘저속노화’와 ‘혈당 관리’ 열풍도 보다 많은 사람이 채식이나 채식 중심 식단에 관심을 갖게 했다. 저속노화 열풍을 이끌었던 정희원 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낮은 당지수의 복합탄수화물인 통곡물과 콩 등을 주요 칼로리와 단백질원으로 삼는 대시(DASH, 고혈압 예방을 위한 식이요법)와 치즈, 붉은 고기를 줄이고 채소와 달지 않은 과일을 많이 먹도록 하는 지중해식 식단을 결합한 식이요법인 마인드(MIND, 신경퇴행성 지연을 위한 지중해-대시 결합 요법) 식단을 추천한다. 엄격한 채식은 아니지만, 다른 장수식단과 비슷하게 자연식물식에 기반하고 있다.



‘블루존’으로 불리는 장수 지역의 식단도 비슷하다. 일본 오키나와, 이탈리아 사르데냐, 그리스 이카리아, 코스타리카 니코야 반도, 그리고 미국 로마린다 등 장수 지역의 식단을 살펴보면 △채소·콩류·통곡물을 풍부하게 섭취하는 식물성 식품 중심 △육류 섭취는 최소화하며 생선을 소량 섭취하거나 콩류와 견과류로 단백질 보충 △가공식품과 정제된 설탕의 섭취 제한 등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미 수많은 연구가 채소 섭취를 늘리고 육식, 가공식품, 정제 곡물을 줄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육식 선호 문화는 공고하다. 한국인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연 60.6㎏으로, 쌀 소비량(56.4㎏)보다 4㎏ 이상 많다. 2014년 51.3㎏에 비해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섭취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고기를 피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다.



전문가들은 채식이나 저속노화 식단 등을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임 원장은 “채식은 지나치게 엄격하게 시작할 때 오히려 실패하게 된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속는 셈 치고’ 채식을 시작해본다고 하신 분을 몇 년 뒤 채식 관련 행사에서 주최자로 만나게 된 경우도 있었다”며 “채식 비중을 늘리며 겪는 변화를 일단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속노화 식단을 제안한 정 교수 역시 “단순당, 정제 곡물, 붉은 고기, 가공육, 패스트푸드를 절제하고 샐러드, 콩 통조림 등 저속노화에 도움이 되는 음식 섭취를 반복하다보면 전반적인 입맛이 자연스러운 맛에 익숙해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채식문화 확산에 나서고 있는 채식평화연대는 채식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각자 채식 음식을 싸와서 나누는 ‘포틀럭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원연희 대표는 “실제로 채식 음식을 먹어본 이들은 새롭고 다양한 풍미에 놀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채식 확대는 기후변화 운동과도 이어져 있다. 녹색소비자연대(GCN)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유통, 대량 폐기의 시대 속에서 맞이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차(노 카), 소고기(노 비프), 플라스틱(노 플라스틱) 등 3가지를 줄이거나 사용하지 말아보자는 ‘3무(無) 운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정현수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대표이자 ‘GCN녹색소비자연대 3무위원회’ 위원장은 “소고기는 사육과정에서 이산화탄소의 20배 이상의 효과를 내는 메탄을 배출하는 등 육류 중 가장 탄소배출량이 많아 대표적으로 포함시켰다”라며 “지구의 건강에 대한 고민까지 아우른 운동이지만 3무 운동에 참여하는 개인들도 혈압·당뇨 등 만성질환과 생활습관 질병 문제가 개선됐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권빛나리 채식평화연대 사무총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채식을 ‘시작’한 분들에게 박수를 드린다”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채식하고, 그 영향으로 나도, 지구도, 동물도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끼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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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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