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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계엄 ‘뇌졸중’ 겪은 한국... 원인 된 극단 정치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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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래리 다이아몬드 美스탠퍼드대 교수

조선일보

‘민주주의 제도·역사’에 관한 권위자인 래리 다이아몬드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본지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지금의 소셜미디어는 알고리즘을 통해 공포와 불신을 의도적으로 조장한다”며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뇌졸중’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은 2017년 8월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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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는 일종의 ‘뇌졸중’을 겪었습니다. 이제 차차 회복하겠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겁니다.”

래리 다이아몬드(73) 스탠퍼드대 교수 겸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비상계엄 및 탄핵 절차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의 ‘체력(體力)’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빠르게 결집했다”면서도 “한국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위기가 결국 정리된다고 해서, 이런 혼란을 유발한 근본적 문제가 사라지지는 아니라는 점을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민주주의 제도·역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2000년 ‘한국 내 제도 개혁과 민주주의 공고화’란 책을 낼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사(史)에도 조예가 깊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후인 2017년 본지 인터뷰에서 “탄핵이란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은 성숙하고 평화롭게 작동했다”라고 평가했었다.

–계엄과 탄핵 절차로 인한 혼란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반대이지만 두 평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안정적이지 않구나’라고 여긴다. 동시에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국민이 계엄을 거부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서울의 거리에 집결했다’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탄핵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태지만, 다음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국제 여론은 ‘한국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한다’는 쪽으로 굳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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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회 본관 정문 앞에 서 있다. 이날 무장한 군은 유리창을 깨고 본관에 진입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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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자유민주주의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 이를 당연히 주어지는 선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해 말 이후 벌어진 한국의 정치적 혼란은 사람으로 치면 갑작스레 뇌졸중이 온 상황에 빗댈 수 있다. 뇌졸중 발생 직후처럼, 한국의 정치 체계에 갑작스러운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상황인 듯하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고 겉보기엔 회복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한국 국민은 이번 위기가 넘어간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뇌졸중으로부터 회복해 괜찮아 보이더라도, ‘뇌졸중이 발생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는 뜻이다.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더 많이 하는 식으로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다이아몬드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태가 이대로라면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며 “한국 국민들은 이 문제(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적 뇌졸중’을 유발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지목하고 싶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 사회, 즉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떤 일을 각각 할 수 있을지 숙고해야 한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또한 이런 문제가 있고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겸허해진다.”

–심각한 정치 양극화를 없앨 해법이 있나.

“마법 같은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정치 노선과 정당 체제를 뛰어넘어 정치인과 시민사회가 (정치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 결집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본다. 모두가 조금 더 겸손해지고, 더 타협할 의지를 갖고, 대화를 더 많이 하고, 다른 진영을 넘나들며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문제는 소셜미디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진영으로 분리돼 서로 간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지금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셜미디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지금보다는 훨씬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 소셜미디어 공간에선 허위 정보, 사실 조작이 판을 친다. 이 같은 오염 요소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들이 퍼뜨리는 허위 정보를 식별하고 제거하는 더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대만은 지난해 초 선거 때 이 문제(중국의 선거 개입)에 대해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룬 듯 보인다. 아울러 소셜미디어 기업과 이들이 만드는 알고리즘도 개선 대상이다. 지금의 소셜미디어는 알고리즘을 통해 공포·불신·분노 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진영


–기업이 공포와 분노를 부추기는 이유가 있나.

“이렇게 해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런 감정을 유발해 소셜미디어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도록 하고 데이터를 모은다. 이를 활용해 광고를 팔아서 돈을 벌어들인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신중한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유럽 등에선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의견을 차단하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듣고 싶은 이야기만 나누는 현상을 ‘사회적 동질화(homophily·호모필리)’라고 설명한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쓰이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메아리의 방)’와 비슷한 개념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려는 경향을 뜻한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선 이해가 상충하는 두 집단 간에 ‘공통분모’가 전혀 없어 토론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서로 보고픈 것만 보기 때문에 파악한 사실 자체가 다르고 상호 존중이 구축될 수가 없다”고 했다. 정확한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토대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엔 치명적이다.

–미국에서 한국의 계엄 사태에 관심이 유난히 관심이 컸던 듯한데.

“두 단어로 답하겠다. ‘도널드 트럼프’(대통령 당선인) 때문이다.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가 첫 임기(2017~2021년) 때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방식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4년 동안 더 극단적인 형태의 대통령 권한 남용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다수의 미국인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면밀하게 지켜봤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허용된 권한을 넘어서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국이 이번에 보여주었다.”

–자유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나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가 최고의 통치 시스템이라고 확신한다. 윈스턴 처칠(2차대전 당시 영국 총리)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권위주의 등) 다른 시스템은 훨씬 더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지금 도전에 직면해 있고, 이런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사람들을 동요시키는 근본적 문제인 경제·사회적 불안에 대처할 새로운 방법을 도출하기까지,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분열적 악영향을 파악하고 신뢰와 소통의 다리를 구축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러시아·중국 같은 나라들이 소셜미디어를 악용해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주의를 의도적으로 부채질하고 조작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든다. 여기에 맞서려면 자유진영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이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래리 다이아몬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다. 민주주의로의 전환과 공고화, 권위주의, 시민사회와 정치적 참여 등이 주요 연구 분야다. 반세기 가까이 민주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로 일해 왔다. 미 국무부, 유엔, 세계은행 등 다양한 정부와 국제기구에 조언했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한국 민주주의에 관한 저서 ‘한국 내 제도 개혁과 민주주의 공고화’를 펴낸 지한파 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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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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