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4 (토)

[양상훈 칼럼] 이재명 막겠다는 국힘, 다 빗나가는 이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불행히도 ‘좀비’처럼 보인다. 할 말은 아니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국힘이 좀비가 된 순간은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12월 3일 그날 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계엄은 보통의 한국인들을 경악하게 했다. 헌법상 요건에 맞지 않고 계엄법을 위반해 국회 활동을 막으려 했다는 법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계엄’이란 것은 어두웠던 역사의 유물로 박물관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우리는 그 수준은 오래전에 졸업했다고 알고 있던, 그래서 계엄이란 용어조차 잊고 살던 한국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들이민 ‘비상계엄’이라는 사태는 황당하고 어이없고 창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몹시 위험했다.

그날 밤에 국회에서 즉시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다음 날부터 벌어졌을 사태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많은 국민이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국회 탄핵소추를 요구하며 모여들었던 시민들이 그대로 계엄 반대 시위에 나섰을 것은 불문가지다. 군인 몇 백 명이 이를 막을 수 없고, 그래서 병력과 중장비를 추가 동원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은 어떻게 됐겠으며 우리 군은 어떤 몰골이 됐겠나. 무엇보다 유혈 사태가 없었겠나. 아찔할 따름이다.

한국이라는 비행기가 난데없이 계엄이란 조류 충돌을 당하고 동체착륙을 한 것이 12월 3일 밤의 상황이었다. 활주로 끝엔 콘크리트 둔덕이 있었다. 하지만 방향을 틀면 그 둔덕을 피할 수 있었다. 대통령을 지지하든 민주당을 지지하든 일단 그 둔덕은 피하고 봐야 했다. 그런데 국힘은 그날 밤 비행기의 방향을 트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비행기 승객들이 이를 모두 지켜보았다. 국힘이 이러고서 승객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나.

민주당이 과반수라 어차피 계엄 해제가 될 것이었으니 참여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한다. 정당 소속 의원이 1명이었어도 그 1명은 계엄 해제 결의에 참여했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정당의 도리이고 의무다. 그 도리와 책무를 저버린 정당은 국민의 신뢰를 잃고 그 순간에 좀비가 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잘못은 만회할 수 있다. 그런데 국힘은 잘못 끼운 단추를 계속 끼워 내려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엄 해제 결의에 참여했던 국힘 의원 18명은 국힘으로선 고마운 존재다. 당에 최소한의 명분을 남겨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힘은 이들을 ‘적’으로 대우했다.

계엄 해제는 해야 했지만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은 다른 문제일 수 있었다. 계엄 사태엔 민주당 이재명 대표 책임도 있으니 대통령만 탄핵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아무리 층간 소음이 심하다고 해도 아파트에 불을 지를 수 있느냐는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국힘은 탄핵소추 표결엔 당론 없이 의원 개인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투표하게 했어야 한다. 하지만 탄핵에 당론으로 반대했다. 당시 탄핵 여론이 반대 여론의 두 배가 넘었다. 모든 것을 여론으로 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배 많은 국민의 뜻을 정당이 거스를 때는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국힘 누구도 그 명분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했다.

국힘은 공석인 헌법재판관 임명도 반대했다. 이렇게 탄핵 재판에 흠결을 만들면 설사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엄청난 사회적 후폭풍이 불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막아 무작정 시간을 끌어보자는 것밖에 없었다. 그로 인한 정치·사회·외교적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감은 보이지 않았다.

국힘은 김건희 특검법도 거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김 여사 문제로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록 국민의 의혹이 큰데 거부만 하면서 정당이 어떻게 유권자들을 설득하나. 이런 당이 새 지도부를 세웠는데 ‘도로 친윤당’이었다.

12월 3일 그날 밤 이후 국힘은 단추를 끼울 때마다 잘못되고 있다. 계엄은 해제됐고, 탄핵소추는 의결됐으며, 헌법재판관은 임명됐고, 새 지도부는 국민에게 아무 감명도 주지 못했다. 결국 김건희 특검법도 통과될 것이다. 국힘이 이러는 것은 결국 ‘조기 대선=이재명 당선’이라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첫 단추를 계속 끼워 내려가면 그 끝은 자명하다. 정공법이 아닌 꼼수로 조기 대선과 이재명 당선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란 것이다.

탄핵심판이 한두 달 늦춰진다고 그 사이에 이 대표의 출마를 막을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는 힘들다. 선거법이나 위증교사 2심 판결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정적 변수가 될지는 의문이다. 이제 국민은 이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노’ 한 사람과 ‘예스’한 사람의 숫자는 2심 판결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당은 죽었다가도 살아난다. 그게 정치다. 얕은 계산으로는 안 된다. 더 죽을 뿐이다. 다 내려놓고 큰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대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당내에 이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좋은 대선 후보들이 있다. 이들을 믿어야 하고 이들에게 명분을 줘야 한다. 윤 대통령과 반대로 사람을 내치지 말고 모아 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이상한 사과 말고 진정으로 사죄해야 한다. 그래도 이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양상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