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긴다. 제복을 입은 자신과 전우의 모습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유사시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 군인복무규율이 명시하고 있는 군인의 자세 중 제1 규범이 ‘명예의 존중’이다. 헌법 제5조에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군인의 사명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때 제복의 명예와 신뢰가 지켜진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장 |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은 이런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제복을 입은 군인이 항공기 탑승 수속을 할 때 편의를 제공한다든가, 지나갈 때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휴가 나온 군인의 커피값이나 식사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소식을 간간이 접할 수 있어 뿌듯하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이에 따른 국회 청문 및 수사 진행 과정에서 군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계엄령에 동원되었거나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아 수사 대상이 된 장군들의 별만 합쳐도 벌써 13개다. 장군을 지칭하는 제너럴(general)은 모든 병과의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 중의 으뜸’이라는 의미이다. 실망스러운 것은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지닌 이들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밤낮없이 국토방위에 매진하는 절대다수의 군인들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사기가 떨어지는 거 같아 안타깝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군사기밀 유출이다. 계엄사령관이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서 전투통제실 내부 구조와 기밀 송수신 절차를 상세하게 언급하다가 제지받는 상황까지 나타났다. 수도방위사령부의 B-1 벙커 현황과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실명 등 여러 건의 기밀 사항이 공개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나라에 어떤 우방이 핵심 정보를 주겠는가.
책임은 정치권에도 있다. 청문회는 출석 증인들에게 면박을 주고 호통을 쳐서 굴복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말하기보다는 말을 잘 들어주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잘잘못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판단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제복 입은 증인을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경우 그 특수성과 보안 문제 등을 고려해 공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적법하게 처벌하고 잘못된 것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군인의 명예와 군사기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제복의 위상이 바로 나라의 품격이다. 군은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안보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사례가 있었다. 그렇지만 안보가 확고해야 민주주의도 지켜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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