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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신년기획]고립된 한국 반도체 산업…협력형 기술 혁신으로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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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한국 반도체 산업계가 직면한 위기다. 우리나라는 미국·대만·일본 등과 견줘 반도체 생태계가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업 및 국가간 합종연횡이 활발해지면서 이같은 상황은 한국 반도체 산업을 더욱 외딴 곳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넛크래커의 재현'도 우려된다. 한 나라가 기술 우위에 있는 선진국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개발도상국 사이에 끼여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한국 반도체가 꼭 그런 상황이다.

◇앞에는 미국·대만, 뒤에는 중국…한국 반도체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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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블랙웰 G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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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확산으로 AI 반도체 수요도 급증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설계는 미국이, 제조는 TSMC를 위시한 대만이 흔들림 없는 패권을 쥐고 있다.

뛰어난 첨단 반도체 설계 능력을 자랑하는 미국이 대기업 중심으로 AI 시장을 잠식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일부 스타트업이 시장에 뛰어들어 힘겨운 경쟁을 펼친다. 자금과 인력 부족 탓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한국 AI 반도체 기업은 엔비디아가 손을 뻗지 않은 틈새 시장만 노릴 뿐이다. 그마저도 성과를 거둘지 아직 미지수다.

제조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제조 강국이었던 우리나라는 대만을 추격하기에 바쁘다. TSMC을 중심으로 첨단 패키징까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생태계를 견고히 한 대만은, 3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대만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TSMC는 64.9%, 삼성은 9.3% 수준이다. 시장 점유율 두자릿수가 무너지면서 '2030년 파운드리 시장 1위'를 노렸던 삼성의 목표는 묘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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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대만 반도체 공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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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의 앞을 미국과 대만이 가로막고 있다면, 뒤에는 중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YMTC와 CXMT를 앞세워 범용 D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은 메모리 시장 가격까지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D램·낸드 가격은 3~4분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중국의 범용 메모리 대량 공급 여파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역시 위태롭다. AI 메모리로 불리는 HBM은 메모리 업계 신성장동력이다. 업계 최초 HBM을 개발한 한국은 SK하이닉스을 중심으로 HBM3·HBM3E 등 세대를 거듭하며 기술 고도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 HBM 제조 역량이 부족했던 중국은 최근 2세대(HBM2) 및 3세대(HBM2E) 양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패키징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술 개발 속도로는 올해는 4세대(HBM3) HBM 개발에도 착수할 것”이라며 “미국의 AI 및 HBM 견제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자립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힘 입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마이크론도 위협이다.

◇'상생' 넘어 '생존'을 위한 협력 생태계가 기술 혁신 이뤄

사면초가의 반도체 산업 위기를 타개하려면 기술 혁신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산업이 그렇지만,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쟁사의 진입장벽을 무너트리고 후발주자를 따돌려야 하는 정석은 역시 기술이 근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와 관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 연구개발(R&D)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 전략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지금까지 특정 기업이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관련 '생태계'가 총출동해야하기 때문이다.

박광선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코리아 대표는 “과거에는 이미 개발된 반도체 기술을 적용, 양산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전에 없던 신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혁신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기업이 '승자독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회로가 나노미터(㎚)를 넘어 옹스트롬(0.1㎚)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같은 생태계 협력형 기술 혁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줄이는 공정 미세화가 점점 어려워져서다. 단순히 전공정만으로는 혁신을 실현할 수 없게 됐다.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첨단 패키징까지 반도체 개발의 전주기 생태계가 협력해야만 전체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반도체 제조사와 소부장 간 협력이 '상생'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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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기흥캠퍼스 NRD-K 전경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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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가 기흥에 차세대 반도체 R&D센터(NRD-K)를 가동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반영했다. 기흥은 국내외 소부장 기업이 다수 포진, 협업 생태계 조성이 유리하다. 삼성전자는 NRD-K를 첨단 반도체 산업 생태계 중심으로 거듭날 것이란 밝히며, 협력사와의 R&D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위한 고해상도 극자외선(EUV) 공정, 신물질 증착, 웨이퍼 두장을 붙이는 첨단 패키징인 웨이퍼 본딩 기술 등을 개발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 기술이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협력 저변 확대도 필요하다. 반도체 소부장 공급망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일본·대만·유럽 등 국가별로 산재돼있는데, 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각기 다른 기술 강점을 협력으로 이어가며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R&D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SK하이닉스는 2028년 인디애나 공장에서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를 양산할 예정인데, 단순 생산을 넘어 현지 대학 및 연구기관 R&D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 퍼듀대와의 협력이 주목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퍼듀대가 첨단 패키징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라며 “SK하이닉스와의 기술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첨단 패키징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 신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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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AI 반도체 기업 시장 점유율 - 자료 : 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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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3분기 매출 및 시장 점유율 - 자료 : 트렌드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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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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