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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거울 보고 일기 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당신의 이야기를 잘 써내려가기 위해[신춘문예 - 소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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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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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는 유튜브에서 ‘엄마 내 오둥이 어디 갔어요?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섬네일은 길바닥에 버려진 오리 인형. 이마에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채 어딘가 어리둥절한 표정. (이 어리둥절한 표정의 캐릭터를 오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댓글 창에서는 사람들이 가져 본 적도 없는 오둥이를 그리워하고 있다. 오둥이를 잃어 본 적 없으면서. 없는 기억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 나도 마찬가지야. 없는 오둥이를 잃어서 슬프다. 그것이 나에게 당신들에게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니라서 마음껏 슬프다. 그래서 여기에다 슬프다고 마음껏 쓴다.

진짜 있었던 그 일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슬프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내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어렵다. 그래도 지난여름 내 얼굴을 보려고 매일매일 노력했다. 이를테면 아침에 양치를 하며 거울을 보는 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치지 않았는지 일기에 적는 일. 그건 아주 힘든 일이었지만, 바로 그 일들을 해내느라 하루가 더럽게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계속해 보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침에는 거울을 보고 저녁에는 일기를 써야지.

나에게 당신들에게 일어나는 슬프고 무서운 일들을 슬프고 무섭다고 쓰기 위해서.

나를 쓸 수 있거나 살 수 있게 해준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수많은 본명을 붙여 주었다. 잃어버려도 그 이름들을 불러서 언제든 되찾을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덕분에 쓰면서 살 수 있다. 아니면 살아서 쓸 수 있다.

남의현

△ 1995년 출생

△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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