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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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꾹꾹 눌러 밟으며 걸었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몇몇 사람들이 먼저 발자국을 남기고 지나갔다.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밟힌 눈은 단단한 얼음이 되어갔다. 몇몇 나뭇가지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것 같았다. 나뭇가지는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눈이 얼음이 되어 투명해지자 모양새를 드러냈다. 나뭇가지는 말랑말랑하다. 나뭇가지는 휘어진다. 이리저리 휘어질 나를, 부러지더라도 말랑말랑하게 허물어질 나를 상상했다. 다시 눈을 헤치고 걸을 때는 종아리에 눈이 닿아 차가웠다.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일은 결백한 사람이 되는 일 같기도 했다. 주위에 폭력이 만연하고, 우리는 오늘도 몇몇의 죽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사이에서 인간은 도저히 결백할 수 없다. 폭력은 조밀하다. 그런 끔찍함과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은 허상일까. 그러나 한 사람이 타자를 만나 사랑하는 순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다짐하는 순간은 아름다움에 가까운 쪽이라는 생각을 한다.
눈송이들은 단단해질 결심을 하고서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모르는 자의 이마 위로 떨어져 그를 사랑하게 되고, 녹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눈송이로 이 세상에 온 친구들에게. 너희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 결국 투명해져, 오랫동안 휘어보고 허물어뜨린 마음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때때로 되새긴다.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 울고 있는 사람의 곁에, 소리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나를 일으켜 계속 걷게 해 준 친구들에게 갚을 수 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친구들의 마음이 오래 간직하며 쓸 빛이 되었다. 바로 보고, 끝까지 쓰는 방법을 알려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처음으로 나를 사랑해 준 미복씨, 미복씨를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될게요. 나의 곁 량곤, 환한 밤을 함께 통과하자.
△1998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미디어창작학부 졸업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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